"아. 참! 할 일이 많은데 부르시네."
투덜대며 옷을 입고 나가려는 나.
"절에 봉사하는 당신의 복이 한숨으로 사라진다네. 즐거운 마음으로 가소."
마누라가 한마디 한다.
"그래, 맞아. 기쁜마음으로 가야지."
스님께선 내게 신도모임의 청년회장자리를 주고 절에 행사가 있거나 여러가지 일들을 맡기시는 데,
갑자기 부름을 받으면 난감할 때가 가끔 있었다. 오늘도 몇가지 밀린 일들을 하는 참이다.
마누라의 충고를 듣고 짜증스런 마음을 달래고 절로 향한다.
절에 가는 길. 들에는 사람들이 모내기준비를 하고 있다. 논에 물을 대고 거름을 주며 바쁘다.
절 바로 앞. 그작년에 만든 자그마한 연못엔 수련이 피어서 절에 오는 사람이나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빼앗는다. 늦봄, 하늘은 맑고 따사로운 날. 고즈넉하다. 수효사를 뒤편으로 아담한 산이 감싸고 있다. 새가 지저귄다.
절엔 신도 몇사람이 와있다. 삼배올리고 요사채에서 서울에서 오신 스님과 인사를 나눴다.
성일스님은 부처님 오신날 설법을 하실 스님이라고 소개하신다. 아침기도를 하는 동안 얘기를 좀 나누라 하신다.
처음보는 그 스님과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스님께선 어디 절에서 오셨습니까?"
스님께서 서울 어디라고 하시는 데 못알아 들었다.
"회장님은 어디사십니까?"
"저야, 여기에 삽니다."
"아. 다 같은 대한민국이네."
웃음.
"우리스님과는 어떻게 아시는 지요?"
"이 곳 스님과 안지는 한 20년 되었지요."
차 한잔을 서로 나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학원을 하고 있습니다."
"학원이라... 교육을 하고 계시군요."
차를 마신다.
스님께서 묻는다.
"불교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깨달음을 찾기 위한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 스탠다드한 대답이네. 첫 입문한 사람이나 오래된 불자들도 그렇게 말하지요. 자신이 생각하는 불교를 말해야 합니다. 자기가 느끼는 불교에 대한 답을 찾으세요. 이 한마디 대화로 상대방의 내공을 알수 있지요."
"네."
고개를 끄덕끄덕,
"금강경을 읽고 있는데 이해가 안되요."
"금강경은 사실 어느 수준에 올라선 스님들에게 주는 법문입니다. 어렵지요. 먼저 아함경을 읽으세요.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써야 합니다. 그 다음에 능엄경. 그리고 법화경을 읽으세요.그러면 어느정도 알게 될 것입니다."
"불심이 없어서 그런지 절에 올 때도 어색하고 예법도 서툴고 스님께서 찾으시는 데 많이 도와드리질 못하고 있습니다."
"불심이 없는 게 아니라 불심이 있지요. 모든 사람에겐 불심이 있어요. 불심을 끄집어 내지 못하는 거겠지요. 자연스레 마음에서 우러나오게 될 것입니다."
"티비에서 파계란 영화를 보았는데 너무 어려웠습니다."
나의 화제에 스님께선 아무 말씀이 없다.
또 차 한모금...
"스승과 제자..." 입을 떼신다.
"불교에선 스님들이 가르치는 게 아니죠. 회사같은 데서 오너들도 아래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다 쥐어주지 않쟎아요?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속세의 일반인들은 알아내고 찾아내서 이해하려 하지요. 아는 것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아는 것에서 자유로와야 한다. 어렵습니다."
"그렇죠. 어렵죠. 다음에 인연이 되어서 회장님을 다시 만나면 다시 묻겠습니다. 아는 것에서 자유로와라 "
"???"
절을 나서는데 외길, 경운기 한대가 세워져 있다. 차가 빠져나갈 수 없는 틈이다. 경운기를 세워 놓고 옆에 논둑을 손보는지 어르신이 열심히 일하신다. 기다렸다. 어르신은 내차를 힐끔 보더니 그냥 일하신다.
'경운기를 빼주겠지.'
나는 마냥기다린다. 바쁘게 일하는 데 차가 다녀서 성가시게 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래도 도로인데 차가 지나가면 비켜주어야 맞다.
흐음. 그렇지. 처음 만난 스님과 좋은 얘기도 했고 아침에 짜증낸 것도 있고 .
그래 내가 기다리는게 맞다.'
어르신은 내 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예 잊은 건지 일에 여념없다.
'그래. 바쁜데 내가 좀 고생하지 뭐.'
200미터를 다시 후진하고 다른 길을 찾아 빠져 나온다.
'자유로운 자유로움 Routin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하마을 방문 (0) | 2009.10.21 |
---|---|
티스토리블로그 개설... (1) | 2009.10.21 |
할머니가 남기신 반닫이 (0) | 2007.03.13 |
금당 다녀오는 길에 (0) | 2006.01.25 |
싼타 메시지 (0) | 2005.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