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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도56

순국제 봉향하던 날 충무사 2013. 1. 6.
관왕묘비문 해석 충무사들어서서 홍살문, 외삼문, 중삼문을 지나면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관왕묘비가 있는 비각은 서재 건물뒤에 있다. 안내표지가 없고 서재에 가려 비각이 보이지 않는다. 탐방객들은 이 비각을 놓치기 쉽다. 관왕묘비의 위치를 옮기든지 비각앞의 담장에 문을 내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많다. 우선 안내 표지판이라도 설치해야겠다. 높이 253cm, 넓이 93cm, 폭 20cm로 1713년에 건립된 이 비는 충무사의 역사를 알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린장군이 관우사당을 세운 것에서 시작하여 이 비가 세워지기 까지, 관우,진린,이순신을 함께 배향하는 의미, 진린과 이순신의 사귐이 간담이 통하였다는 내용, 진린이 이순신장군을 극진히 존경하여 경천위지의 재라고 극찬하는 내용들이 새겨져 .. 2011. 12. 24.
제413주기 충무공 이순신장군 순국제 열려 1598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413년 전 남해바다 관음포에서 적의 유탄을 맞고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말씀을 남기고 54세를 일기로 장엄한 삶을 마치신 충무공 이순신장군. 공의 유해는 통제영이었던 고금도의 월송대에 임시로 모셔졌다. 이곳 고금도에 함께 주둔했던 명나라 진린장군이 공의 죽음을 심히 슬퍼하며 곡하고 돌아가는 길에 그 운구에 제사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까지 조선,왜,명 세나라의 7년간 전투는 끝났다. 고금도 충무사에서 열린 이순신장군의 순국제. 충무사유적보존위원회 이상철 위원장은 식사에서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말은 바로 우리고장 고금도가 그 시원이 되어야 하며, 고금도는 전시 삼도 수군통제영으로써 그 역할을 다한 성역이기에 후손에 길이 물려 줄 자존심.. 2011. 12. 24.
솟대 오리 솟대오리 항동마을 간척지현장엔 날지 못하는 오리가 솟대끝에 앉아 있습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바닷바람에 삼복더위도 잊고 갯벌을 굽어 보았지요. 가끔 척찬도에서 날아 온 산비들기에게 재미나는 얘기도 들어가며 갈매기들이 동무하자고 날아오면 미끈한 몸매를 으스대기도 하고 마을 가운데 사장의 어른나무에게 올 해 김작황이 어떨까요? 의논도 하면서 마을사람들이 장만한 새해맞이 음식을 푸지게 먹곤 했지요 밀려드는 파도에 날아갈 듯 살아 있던 솟대 오리 갯벌위를 헤집으며 지렁이와 낙지와 쏙같은 것들은 사람들에게 주고 호수같은 바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았습니다. 언제부턴가 막나금 으슥한 곳에 조립식건축이 서더니만 덤프트럭이 수도 없이 드나들고 마침내 끊겨버린 갯벌에선 갯고랑내가 풍겨 왔어요. 목봉아래까지 차오르던 파도는 .. 2011. 12. 12.
충무사에서 - 목포MBC 촬영장면 목포MBC에서 촬영왔다. 충무사의 유래 월송대에 얽힌 이야기를 김영관 (전)충무사보존위원회 위원장님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충무사의 정전에 있는 이충무공의 영정사진 충무사의 동재이다. 옛날 유림들이 회의나 공부하던 곳이다. TV 방영분 목포MBC 어영청바다야 '갯길이야기' http://www.mokpombc.co.kr/skin/board/hdtv_vod/vod.php?bo_table=heave_sea_vod3&wr_id=40 2011. 12. 7.
화성마을에서 덕동마을 망덕산 중턱에서 잡은 화성마을 초등학교6년의 기억이 아스라한 곳이다. 덕동초등학교. 그리기 숙제로 자주 그렸던 교회풍경과 언덕이 보인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마애가 눈보라치던 날, 이 언덕을 넘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었지. 지금은 폐교되어 개인에게 팔려 운동장엔 묘목들이 심어져있다. 2011. 1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