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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11

관왕묘비문 해석 충무사들어서서 홍살문, 외삼문, 중삼문을 지나면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마주보고 있다. 관왕묘비가 있는 비각은 서재 건물뒤에 있다. 안내표지가 없고 서재에 가려 비각이 보이지 않는다. 탐방객들은 이 비각을 놓치기 쉽다. 관왕묘비의 위치를 옮기든지 비각앞의 담장에 문을 내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많다. 우선 안내 표지판이라도 설치해야겠다. 높이 253cm, 넓이 93cm, 폭 20cm로 1713년에 건립된 이 비는 충무사의 역사를 알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진린장군이 관우사당을 세운 것에서 시작하여 이 비가 세워지기 까지, 관우,진린,이순신을 함께 배향하는 의미, 진린과 이순신의 사귐이 간담이 통하였다는 내용, 진린이 이순신장군을 극진히 존경하여 경천위지의 재라고 극찬하는 내용들이 새겨져 .. 2011. 12. 24.
묘당도 이야기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5 (고금도 사람들) 노량해전이 끝나고 이순신 장군의 유해를 이곳 월송대에서 임시로 모셨다. 이듬해 충남 아산으로 옮길 때 까지 가묘로 있었다. 장군을 모셨던 자리엔 지금까지 풀이 자라지 않는다. 사람들은 돌아가셔서 까지 바다를 굽어 살피려고 하는 장군의 기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덕동마을 김광열 옹(74)은 묘당도이야기를 마치 당시의 상황을 직접 본듯이 말씀하셨다. 노량해전으로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시신은 배를 타고 우리수군의 본영이었던 덕동진으로 돌아와서 묘당도 언덕(월송대)에 임시 안치된다. 그곳에 관왕묘가 있었기 때문에 묘당도라고 했다는 정설이 있어서 김광열 옹의 얘기가 틀리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백성들은 묘한 집이 들어서서 묘당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게 여겨졌을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의 상상으로 재해.. 2011. 6. 3.
풍수로 풀어보는 덕동둘레 지명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3 (고금도사람들) 고금진터(덕동)에서 바라본 조약도, 천동,오른쪽 약산대교가 보인다. 덕동앞을 흐르는 바다를 김광열 옹은 진또깡(진도강)이라고 전한다. 고금진터의 흔적을 찾아보지만, 너른 터와 담벼락만 남아 있다. 이곳이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까지 통제영으로 삼았던 본영이 있던 자리다. 이곳은 전쟁이 끝나고 첨사진으로 사용했고, 해방 전에 면소재지로 면사무소가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마구청이 있었어, 말을 키우는 막사, 우리들이 얼른 말하기는 마굿간인디 여기는 마구청이라 불르거든. (옛날에) '마구청 돌기 경기를 하자' 그랬어. 곁에 샘물도 있고 말이 대기를 하고 있었어, 이순신장군이 여기에 진을 치고 있었으면 항상 파발을 두고 조정으로 연락을 취하게 되었제. 말을 타고 가서 연락을 했어. 여기서 가교리.. 2011. 5. 27.
왕(王)대와 신(臣)의 대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2 (고금도사람들) 바닷가 마을 집집마다 뒤꼍에 울창하게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왕대와 신의대가 눈에 들어 왔다. 저 풍경이 이젠 예사롭지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려 했던 고금도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광열 옹은 우리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 있는 까닭을 이야기로 풀어갔다. 시누대가 바람에 비벼대던 소리가 오래도록 내 귀에 들렸지만, 이제 그 소리가 나를 깨우고 잠들어 있던 옛사람들이 꿈꾸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김광열 옹은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 뿐만아니라 꿈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가를 가르쳐 주었다. 활을 만드는 왕대와 화살을 만드는 신의대. 활은 궁사가 지니고 있고 화살은 궁사가 시키는 대로 활을 떠나 .. 2011. 5. 23.
돌, 임진왜란때 무기로 사용했다.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1 (고금도사람들) 첫 만남, 김광열 옹(74)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만난 적은 없지만, 마치 백기완 선생과 만나는 그런 것이리라는 착각이 들었다.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라치면 노래가락처럼 점점 흥을 돋구다 "아, 그거 참!" 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김광열 옹의 얘기는 나이 어린 우리 두사람의 마음을 빼앗았다. 말속에 열정이 담겨 있었다. 벗과 나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밥 때가 훨씬 지나서야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 문밖을 나섰다. 바닷가 마을 집집마다 뒤꼍에 울창하게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왕대와 신의대가 눈에 들어 왔다. 저 풍경이 이젠 예사롭지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려 했던 고금도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2011. 5. 22.
제466주년 충무공이순신 탄신기념대제 충무사에서 열려 지난 4월 28일, 고금면 충무사(사적 114호)에서 충무공 이순신장군 탄신 제466주년 기념대제가 열렸다. 이충무공유적보존위원회(위원장 이상철)가 주관한 이날 행사엔 박종연 군의원을 비롯한 관내 기관,사회 단체장 및 지역유림들과 양성 이씨 종친회등 200여명이 참여해 보존위원회의 전통예식으로 다례제를 올리고 헌화 및 분향했다. 이상철 이충무공유적보존위원장은 기념사에서 "4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충무공의 상여채를 붙잡고 쓰러졌을 고금도민의 심정으로 그때를 회상한다" 며 "충무공은 우리에게 인자한 대지요 찬란한 태양이나 다름 없다. 하지만 태양의 고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신기념 다례제를 엄숙히 거행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와 같은 행사를 진행하는 수많은 곳 중에서 더.. 2011. 4.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