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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마을5

화성마을에서 덕동마을 망덕산 중턱에서 잡은 화성마을 초등학교6년의 기억이 아스라한 곳이다. 덕동초등학교. 그리기 숙제로 자주 그렸던 교회풍경과 언덕이 보인다. 초등학교 1학년 꼬마애가 눈보라치던 날, 이 언덕을 넘지 못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었지. 지금은 폐교되어 개인에게 팔려 운동장엔 묘목들이 심어져있다. 2011. 12. 7.
수마석들이 이곳에 왜? - 화성마을 고망채에서 이런 돌들을 뭐라 하지? 손으로 잡고 던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매끈한 돌. 그냥 짱돌?주먹돌?차돌? 돌모으는 취미가 있는 사람들은 이돌의 이름이나 질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검색해보니 역시 나온다. 인터넷세상 최고야. 수마-석 水磨-石 물결에 씻겨 닳아서 반들반들한 돌 임진왜란때 이런 수마석을 무기로 사용했다. 임진왜란, 통제사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우리수군의 통제영이었던 고금도 주변엔 이런 수마석들이 무더기로 발견된다. 화성마을 어란정 위쪽의 고망채 언덕아래. 밭두둑과 돌밭에 널브러져 있는 돌들은 분명 자연석이었다. 이 돌들이 임진왜란 때 육박전을 하면서 손으로 직접 던지기도 했을 것이고 대포알로도 쓰였을 것이다. 고망채 언덕 아래에 성터가 있었을 것이고 덕동마을의 성등에서 시작한 성길이 여기를 지났.. 2011. 5. 23.
망덕산(望德山)에 올라 화성마을바닷가에 보이는 풍경이다. 매생이 발이 박혀있는 썰물에 큰개섬이 보인다.1872년에 제작된 지방도 고금도진지도엔 가지도(加枝島)라 명기되어 있다. 참왜도 - 이순신장군의 아들 면을 죽인 왜군을 붙잡아 이곳에서 죽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화성마을 앞에 있는 큰개섬과 나란히 놓여있다.망덕산에 오른다. 임진왜란때 수군본영이 자리잡은 덕동마을 뒷편에 우뚝솟아 있다. 수군통제영이 있을 때 봉수대와 왜군의 상황을 전망했던 곳이다.망덕산 오르는 중에 묘당도가 잡힌다. 이곳엔 정유재란때 명나라 구원군 진린장군의 부대 2,500명이 주둔했다.명나라 구원군은 5천명의 규모로 덕동마을에 당도하여 묘당도와 척찬리에 각각 2천5백명이 주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우리 수군은 덕동본진에 주둔했다. 묘당도는 일제.. 2010. 11. 9.
어란정 - 고금면 화성마을 정유재란때 마지막 본영이었던 고금면 덕동마을 옆, 화성마을에 있는 이 우물은 우리 수군의 목마름을 해결 하기 위해서 팠다고 하는데 어란진만호가 우물을 팠다고 해서 어란정이라 했다는 이야기와 어란이란 여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순신장군과 진린장군이 고금도에 본영을 설치하고 임진왜란의 막바지를 준비하면서 여기 저기 남아 있는 유적들은 후세사람들의 이야기짓기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다. 그래서, 전설이 되었다. 옛날의 초라한 우물을 다시 복원하였다. 이곳에서 물한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왜적을 물리쳤던 우리수군들을 생각해본다. 2009. 11. 29.
2009.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