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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Wando고금도Gogeumdo

지방자치의 걸림돌, 권위주의를 생각한다,

by ☆ Libra 2009. 10. 21.
지방자치의 걸림돌 권위주의를 생각한다!

시민주권운동을 통하여 극복해야

-눈치보고 핑계를 대는 것은 지역민에 대한 책임회피 !!

지역의 활동가들이여! 커밍아웃하자. 시민주권운동의 전개필요하다.


 지역사회는 중앙에서 떨어져 있는 거리만큼이나 사회,경제,문화의 수용이 늦은 까닭에 변화의 움직임이 더딜 수 밖에 없다. 인적,물적자원의 후진성, 노령사회로 쌍방향의 정보교류매체인 인터넷 사용환경이 뒤떨어진다. 게다가 완도는 12개의 읍과 면이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교통환경에 제약이 많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정체된 모습이다. 이는 소통의 부재로 나타난다.

 
  그동안 지역유지들은 케케묵은 권위주의를 만끽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외면한 권위주의의 밑바닥에는 노예근성이 깔려있다. 지역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나름의 권위주의를 누리다 그들 역시 중앙권력에 노예근성을 보인다.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대로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약한 모순적인 권위주의는 자기도 모르게 빠져 들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지역의 문제만은 아니다. 사람사는 곳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중심지에서 벗어날수록 지역토호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고있는 현실이다. 지역유지들의 권위주의가 지방자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올바른 권위의 모습을 찾으려면, 주위의 잘못된 권위주의의 모습, 그동안 덮어두었던 것들을 드러내야만 할 것이다. 권위주의로 나타나는 권위의 왜곡된 형태-권위자체는 선도 악도 아닌데 단지 권위를 추구하는 권위주의가 문제-를 비판하려고 하면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오랜 관행과 획일화된 사고로 무뎌진 것들을 끄집어낸다는 것이 서로 대면해야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이러한 행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하는 이유는 권위주의자체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어느때보다 시민주권의 시대가 필요한 때 지역민들이 잘못된 권위를 반성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권위를 찾기 위함이다.


 완도의 지리적인 환경과 고령사회가 갖고 있는 공동체의 폐쇄성은 지역유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사회규범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한 사회규범은 오래된 관행의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전승된다. 지역사회에서 지역유지-주로 부유한 자영업자,기관장,정당의 간부-들은 어떤 여론을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을 권위주의화한다. 대부분획일화된 것들이다. 지역주민들은 수동적이며 그것을 비판하려 하면 억지를 부리거나, 논리와 검증의 과정없이 지역정서나 관행을 들어 서로 좋자고 하는 일 아닌가하며 넘어간다.


 선거를 통한 정치행위도 생색내기좋아하는 지역유지들이 선거꾼으로 나서고 지역민들은 거부감없이 동조한다. 특히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에 있어선 -우리나라전체에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한-혈연과 지연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성숙하지 못한 정치의식을 갖고 있다. 그들을 배불려준 것은 지역사람들의 피와 땀일 터인데, 관공서직원과의 접대를 통해 특혜사업을 챙겼을 것이 뻔한데, 별의별 감투를 꿰어차고서 국회의원마냥 지역민앞에서 거드름을 피운다. 공식적인자리에서는 에에~로 시작하는 뻔한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분명 같은 지역안의 사람이면서 비뚤어진 특권의식과 엘리트의식을 갖고 있다.


 정치판에서도 지역유지란 영향력- 재력과 명예(감투)-을 바탕으로 권력이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운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고 노력한다. 변신의 귀재들이다. 권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권력을 좇아 빌붙는 방식으로 사익을 채우기에 바쁘다. 꼴불견중의 꼴불견이다. 아뭏든 권위주의는 촌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고도 그런 줄 모른다. 권위주의를 즐기는 입장에선 꿀맛일 테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을 알고 있는지.


 그들의 거드름은 분명 손가락질 받을 만하다. 부자가 욕먹는 것은 이런 연유가 아닌 듯 싶다. 지역사회안에서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의 행동양식엔 관행으로 굳어진 권위주의가 넘쳐 흐른다. 그들이 지역사회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모든 지역유지들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몇가지 행태를 얘기하다 보니 지역사회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그려졌다. 사실 우리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역에서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순간 타성에 젖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권위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주민의 참여와 공감을 통하며 가능하다. 사회발전의 동력이 부단한 도전과 응전에 있듯이 권위주의에 물든 자신을 일깨우고 쉼없는 문제의식을 제기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의식있는 사람들이 오래된 권위주의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할뿐더러 권위주의에 순응하는 노예근성으로 일관한다면 새로운 권위는 세워지지 않는다. 시민주권의식과 시민주권운동을 해야한다. 그러러면 나서야 한다.


 지역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시대적인 요구를 관망하고만 있는 것은 죄이다. 행동할 수 있는 데도 눈치보고, 핑계를 대는 것은 지역민에 대한 책임회피다. 잘못된 권위는 저절로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권위주의와 한바탕 붙어야만 올바른 권위가 세워지는 것이다. 낡은 가치관과 병든 관행은 바꿔야 한다.


  21세기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의 시대이다. 이 시대에 권위란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존중이며,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의 대상인 것이다. 지역민에 의해 자치를 여는 시대가 아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서 올바른 권위를 찾아야 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권위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자. 우리는 정치자영업자나 모든 관료들에게 할말이 있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문화는 가꾸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다. 변화하는 개혁의 시대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얼렁뚱땅한 사고를 버려야 한다. 제대로 된 권위가 대접받으려면 모두가 아니오 할 때 예! 라고 말할 수 있고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할 지도 모른다. 튀는 행동이야 말로 이 시대에 걸맞는 행동인 것이다.

kpprcam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