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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Wando고금도Gogeumdo

<부부이야기> 뱃길이 맺어준 인연

by ☆ Libra 2009. 12. 5.

 며칠 전 신문에 신지~고금 간 연도교가 놓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 기쁨 반 아쉬움 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은.....


 4년간 직장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우연찮게 4H활동을 하면서 마음 설레며 종종 눈인사를 나누는 같은 지역 회원이 있었는데, 뜻밖의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만남으로 너털웃음을 만들게 하는 일이 생겼다.

 같은 마을 후배가 맞선 보러 간다는데 친구랑 영문도 모른 체 졸졸거리고 따라갔는지 지금 생각하면 도통 모르겠지만 그 자리엔 그 사람이랑 후배의 맞선자리가 아니었던가.

 왠지 모르게 배신감 같은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수다를 떨면서 늦은 밤까지 주책을 떨고 있는 내가 우습기도 하였다.

 아뿔사~~!

놀다보니 십릿길 되는 집을 걸어간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었고 그 사람의 80cc 오토바이가 유일한 교통수단 이였으니 이를 어쩌랴.


 3명을 차례로 실어다 준다는 말에,  먼저 집에 가는 게 안전하다는 잔꾀를 부리며 그 사람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서 집에 다다를 무렵

“내일 저녁 8시에 매시리에서 봅시다”

"푸하하하"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속으로 비웃고 말았지만 싫지는 않았었다.


 그  다음날 친구랑 후배 집을 가서 어제 선봤던 결과를 넌지시 물어봤지만 배시시 웃으며 생글거렸다.

후배가 눈에 어른거려 약속장소에 나가지 않았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병원에 누워있다는 소식이 들렸고 그 이유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던 나 때문이었다며 병문안 가야된다고 그와 친한 동네 오빠는 우겨댔지만 괜스레 후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끝내 가지 않았다

.

 그 후 4H모임에서 그 사람 얼굴에 큼직한 흉터자국을 보았고 뭔지 모를 간절한 눈빛을 봤지만 애써 외면한들 마음 한켠에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애잔함도 함께 묻어나는 것을 어쩌랴.

재채기와 사랑은 감출 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숨겨도 스멀거리고 올라오는 미묘함이랄까,

나 혼자서 마음에 담고 있다고 강한 부정을 하면서 자꾸 밀쳐내고 있었나보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는 사람이 맞선 한번 보라고 하도 성화 길래 큰맘 먹고 나간 자리에 내가 함께 나왔으니 무척 당황스러웠었고 그녀가 아닌 나만 눈에 보였다니 말해 뭐하랴.


그 사람은 지도소 소장님을 통해 중매를 주선했고 부모님께서는 골병만 남을 농삿일을 시키지 않겠노라는 명목으로 절대 시골로 시집보내지 않겠노라 했으니 그져 딱히 대들고 나 시집 가겠노라 머리 싸맬 일도 아니였지만 왜 그리도 속 상하던지. 별수 있을랴!


 아무리 마음에 담아둔다 한들 부모님 의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생각에 그져 시간만 흘렀다.

동네 사무실에 달랑 한 대로 통하는 시절 혹여 어디서 전화라도 오면 전화 왔다고  스피커로 방송하던 때라 전화 온 횟수 잦아지면 누구네집 딸래미 바람났다는 소문이 두려워 맘대로 전화도 못하고 전전긍긍 할 무렵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4H 도대회 행사에 참여 시키자고 소장님께서 부모님께 사정, 사정함이 단순한 참여만은 아니였으리라는 계산은 나중에 알았으니.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냈었다는 이유로  뒷풀이가 이어지고 이미 각본이 짜여진 데로 회원들은 각자 바쁘다며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몇 명 안 남은 사람들만이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를 띄우기 바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뱃시간을 이유로 시계을 흘끔거렸지만 아직 막배 시간이 이르다고 걱정 말라는 소리를 그대로 믿고 분위기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었다.

막배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부두로 갔더니 고금으로 가는 배는 이미 떠나고 없었으니 발만 동동거린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등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사람들의 속내를 어찌 알았으리.

맙소사~~

하절기에서 동절기로 접어들어 막배 시간이 단축 되었던 게 이삼일 전이었고 그걸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뱃시간을 이용해 둘이 맺어 줄 심사를 전혀 눈치 못채고 있었으니 이를 기뻐하랴, 화를 내랴.

그렇게 되어버린걸 그 사람들이나 나 역시 속으론 쾌재를 불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막배가 떠났다는 이유로 우린 더 놀다가 모타보트를 타고 가자고 약속을 했건만 그걸 굳이 지켜려고 하는 이는 없었는걸 보니.

 그날 이후로 난 4명의 엄마가 되었다.

물론 내 곁에 든든한 후원자인 그이도 함께 있으니 그날이 무척 좋은날 이었나보다.

섬과 섬이 하나로 묶이는 연도교가 생긴다는 소식에 새삼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스멀거리며 올라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고 애써주신 소장님을 찾아뵙고 고마웠노라 안부를 전하고 싶다.

그때 막배를 탔더라면 나의 든든한 후원자보다 더 든든한 버팀목을 하고 있는 내 아들 딸들은 어찌 얻었으며, 아직도 공부한답시고 집을 자주 비우는 철없는 며느리가 미안해 할 적마다 집안일 걱정일랑 말고 열심히 해보라고 토닥거려 주시는 시어머님을 못 만났으면 내 인생은 참으로 쓸쓸했을 것이다.


 어머님~~! 그때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 기억하시나요?

"오늘은 아주  밑알 마져 없어졌구마".

결혼 전 어머님 집에 몰래, 몰래 들나들적에 차마 부엌에 들어가 밥은 못 먹고 달걀만 삶아 먹었다는 것을 이제야 실토합니다.

그랬어도 제가 밉지 않으시죠?

사랑합니다. 어머니~~

여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