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다녀와서
2008/가을
-개성 다녀와서
개성방문 하루 전날, 불과 몇 km 떨어진 파주의 한 모텔에서 묵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경수속을 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을 방문하고 해질녘 입경수속하여 돌아올때까지 낮 일정을 개성에서 보냈다.
아침8시,여덟대의 관광버스는 경의선도로 남측출입사무소를 떠나 군사분계선을 통과했다.
가로등에 매달린 한반도지도가 사라지고 군데 군데 나이어린 병정들이 서있다.
수백미터의 거리를 두고 양측의 태극기와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북한안내원이 특유의 말씨로 안내방송을 한다. 낯설고 무겁다.
버스행렬이 지나는 동안 개성사람들은 길을 터주었다.
넓은 길가에 자전거를 멈추고 우리를 보고 있다. 서로를 호기심에 바라본다. 그들의 일상에 끼어든 남측사람들의 행렬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버스안에서 손을 흔들어 주면 같이 손을 흔들기도 한다. 아이들의 꾸밈없는 인사는 어디에서건 깜찍하다. 저 녀석들이 커서 알게 될 이 나라의 역사, 그들은 어떤 세상에서 살아 갈까?
박연폭포에 도착했다.
박연의 메마름을 보았다.
오다보니 가을가뭄으로 개성의 개울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선의 양반네들이 풍류를 즐겼을 만한 오롯한 곳이다. 명망있는 양반님네 이름자 새겨진 바위들은 세월 흐른 줄 모른다. 우리는 꽃과 같은 봉사원아가씨와 사진찍느라 바쁘다.
가을깊은 산, 단풍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운치를 즐기며 내려왔다.
차창밖에 보이는 산은 벌거벗었다. 나무가 없는 산비탈 ‘저런 곳에다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 싶은 가파른 밭이랑. 무엇을 얼마나 거두었을까? 황량하기만 하다.
비슷비슷한 마을의 집, 학교운동장, 건물들의 모습에 익숙해질 때 쯤, 빨간색 페인트로 선명하게 씌어 있는 구호가 눈에 와 박힌다.
개성시내에 있는 통일관의 13첩반상기에 담긴 점심은 꿀맛이었다. 그런데, 왜 눈시울이 붉어지는지. 개성소주한잔 들이킨다.
식사후 개성시가지를 볼 수 있는 곳에서 기념촬영했다. 차들이 거의 없는 개성거리엔 많은 시민들이 오고 간다. 그들은 행복할까? 검고 칙칙한 투박한 옷차림. 그을린 얼굴.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영화촬영하는 세트장같다.
유명한 선죽교는 개성시 한복판에 있었다. 박물관에 진열된 역사의 흔적과 멋진 경치는 남측의 여느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숭양서원과 고려박물관에서 북한안내원은 우리가 건네는 대화에 자연스레 대답한다.
대기시간이 지루해서인지 연방 담배를 피운다.
그런데, 언쟁이 일어났다.
“안창호선생을 아시오?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데 그것도 몰라?”
남측의 한 어르신이 한 수 가르치시려나 보다고 가만히 들어보니,
북한안내원 “그럼,선생님께선 김일성주석님의 고향이 어딘지는 아십니까?”
되받는다.
“그럼,당신은 김일성 주석 본관은 어딘지 알아?” 어르신은 그것도 모르냐는 투다.
“뭐이 그것이 그렇게 중요합네까?”
떨어져 살아온 만큼 좁혀지지 않는 두사람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린다. 계속하다간 안되겠다. 주위에서 말린다.
한편, 남측의 한 대학생과 북한안내원이 저만치서 얘기하고 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대화는 끝이 없다. 마치 형과 동생이 오랜만에 만난 듯 웃음띠며 먼가를 얘기하고 있다. 보기 좋다.
관광일정이 끝나고 개성공단을 다시 지나온다. 남쪽의 공단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라 개성시내와 확연히 다르다.
남측으로 돌아가는 수속, 북측에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한모습을 바삐 돌아가는 영화의 장면처럼 머리와 가슴에 담았을 뿐.
디카에 개성사람들은 없다. 북측출입사무소에서, 촬영한 것들을 그마저 검사받아야 한다.
북측은 자신들의 모든 모습을 가려야겠지만, 남측관광객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이 상태로 무작정 통일이 되서는 안되겠다 싶다. 경협이든 민간교류든 거리를 좁히고 좁힌 후에 충격을 줄이는 통일이 되어야 겠다.
핵을 가지고 몸부림치는 북측에 남측의 한 단체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사망설따위의 삐라를 살포한다. 북측이 무너져야만 그들의 욕심을 채울수 있는 것인가?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 북한은 포용하고 나눠야 할 파트너이지 우리의 것도 아니고 우리가 북한의 것도 아니다. 엄연히 서로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의 해결은 북한의 체제유지를 보장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들이 살아갈 방법이 있을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지금 당장 북한 체제의 붕괴는 남과 북 모두에 이롭지 못하다.
현대아산직원은 하루 종일 북측에 있다가 남측으로 넘어올 때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되풀이 되는 관광일정이지만 북측에선 왠지 경직되었다가 남측에 넘어오면 긴장이 풀린다고.
그렇다. 자유란 맘껏 마실 수 있는 공기와 같다. 통제된 사회의 공기는 답답한 것이다.
개성에서 찍은 사진들은 정작 그 곳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담지 못했다.
창을 통해서 마주치는 눈빛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밖으로 드러나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자본주의에 절은 눈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북측사람들의 모습에 측은지심이다가 이렇게 밖에 못했냐며 북측의 권력자들이 못마땅해지는 것이다.
kpprcam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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