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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Wando고금도Gogeumdo

이순신 장군 운구행렬 재현행사 - 고금도에서

by ☆ Libra 2010. 12. 21.

 전쟁중이라 시신을 임시로 안치할 수밖에 없었다. 장군의 유해는 남해의 충렬사와 당시 수군 통제영이었던 고금도에 임시 안치하고 전쟁이 끝난 후 충남 아산에 모셔지게 된다. 이순신 장군이 순국한 날은 음력 11월 19일이어서 이번 재현행사는 기일에 맞춰 남해 관음포에서 완도 고금을 거쳐 아산 현충사까지 1박2일 여정이었다.

  시작과 출발은 있으나, 고금도가 경유지에 불과한 정도로 알려진 이 기획은 많은 아쉬움을 준다.
역사적 사실을 다시 확인하자면 당시의 수군본영이 고금도에 있어서 조선 수군과 명나라 장군 진린의 부대가 함께 노량해전을 준비하고  마무리 지었던 곳이고 장군의 사후, 유해가 83일간 안치했던 장소이며, 전쟁 후 처리해야 할 여러 절차를 고금도에서 진행하였을 것이다.

 과연 이 행사가 역사의 사실을 얼마나 제대로 고증하고 재현하였는가. 412년 만의 재현은 추진주체의 요구에 부응한 행사였다. 의미있는 기획이었지만, 운구행렬의 시작과 끝을 부각시키고 고금도가 중간 경유지 정도로 인식하게 된다면 이것은 역사의 현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남을 수 있다.
 
 이 행사의 중심에 고금도가 있어야한다. 한편으론 관련 기관단체는 부끄러워 해야한다. 공중파를 비롯한 일간지 기자들의 취재열기가 뜨거운 반면 지역의 언론사 기자 한명 보이지 않았다. 우리역사와 문화를 우리자신이 모르고 있다. 
 
해마다 이 행사를 열 예정이라면 추진 주체로 고금도의 문화, 단체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하고 완도군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참고] 이순신장군은 노량해전 중 1598년 11월 19일(음) 남해 관음포 앞 바다에서 순국한 후 3일간 남해 충렬사에 잠시 안장되었다가 11월23일 남해에서 배를 통해 고금도에 모셔 다음해 1월30일까지 안장됐다. 이후 2월 1일부터 11일까지 고금도에서 배를 이용 강진을 거쳐 육로를 통해 아산 금성산에 안장되었다가 15년 후인 1614년 어라산(음봉면 산정리)에  모셨다.

이른 아침 월송대에선 발인제를 모셨다. 발인제는 고금면의 충무사유적보존위원회에서 진행했다.
원경에 비친 운구행렬, 월송대와 충무사를 지나는 행렬이 들물에 비친다. 
면소재지에서 운구행렬이 지나고 있다. 고금도사람들이 만장을 들고 앞장서고 상여가 뒤따르고 있다.
노제를 마치고 김영관 충무사 유적보존위원회 위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