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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4

풍수로 풀어보는 덕동둘레 지명 2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4 (고금도사람들) "(덕동을 바다에서 보면) 장군이 활을 쏘는 형국이다. 화살이 나간 저기(바다건너 조약도를 가리키며) 활목이라고 있제, 빨간 지붕있제? 약산 있는디, 어째 푹 꺼졌제? 화살이 지나간디라 해서 활목이여, 거그 사람들 한테 물어보면 여가 활목인가 아닌가 알아, 그 발로 화살이 날라 활목을 건너서 화살이 살끼미로 가, 저그 옥을 팠던 장소있는가, 여기서 보면 콱 맞아서 상처가 났는가, 300년 전에 풍수가 말한 것이 왜 이렇게 맞을까 화살이 끼었다 해서 살끼미여, 우리말로. 저곳은 일제시대 때 옥을 판 자리며 저기를 판 것은 백년전인데 왜 이라고 맞냐. 내가 상상하는 것이 또 있어. 나도 풍수같은 재미가 있어. 호랑이가 소를 잡았어. 그 전에는 안잡았는디, 십 여년전에 다리를 노니까(약산대교) 소 뒤덜미를 여.. 2011. 5. 29.
풍수로 풀어보는 덕동둘레 지명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3 (고금도사람들) 고금진터(덕동)에서 바라본 조약도, 천동,오른쪽 약산대교가 보인다. 덕동앞을 흐르는 바다를 김광열 옹은 진또깡(진도강)이라고 전한다. 고금진터의 흔적을 찾아보지만, 너른 터와 담벼락만 남아 있다. 이곳이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전까지 통제영으로 삼았던 본영이 있던 자리다. 이곳은 전쟁이 끝나고 첨사진으로 사용했고, 해방 전에 면소재지로 면사무소가 위치했던 곳이기도 하다. "마구청이 있었어, 말을 키우는 막사, 우리들이 얼른 말하기는 마굿간인디 여기는 마구청이라 불르거든. (옛날에) '마구청 돌기 경기를 하자' 그랬어. 곁에 샘물도 있고 말이 대기를 하고 있었어, 이순신장군이 여기에 진을 치고 있었으면 항상 파발을 두고 조정으로 연락을 취하게 되었제. 말을 타고 가서 연락을 했어. 여기서 가교리.. 2011. 5. 27.
돌, 임진왜란때 무기로 사용했다.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1 (고금도사람들) 첫 만남, 김광열 옹(74)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만난 적은 없지만, 마치 백기완 선생과 만나는 그런 것이리라는 착각이 들었다.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라치면 노래가락처럼 점점 흥을 돋구다 "아, 그거 참!" 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김광열 옹의 얘기는 나이 어린 우리 두사람의 마음을 빼앗았다. 말속에 열정이 담겨 있었다. 벗과 나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밥 때가 훨씬 지나서야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 문밖을 나섰다. 바닷가 마을 집집마다 뒤꼍에 울창하게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왕대와 신의대가 눈에 들어 왔다. 저 풍경이 이젠 예사롭지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려 했던 고금도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2011. 5. 22.
망덕산(望德山)에 올라 화성마을바닷가에 보이는 풍경이다. 매생이 발이 박혀있는 썰물에 큰개섬이 보인다.1872년에 제작된 지방도 고금도진지도엔 가지도(加枝島)라 명기되어 있다. 참왜도 - 이순신장군의 아들 면을 죽인 왜군을 붙잡아 이곳에서 죽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화성마을 앞에 있는 큰개섬과 나란히 놓여있다.망덕산에 오른다. 임진왜란때 수군본영이 자리잡은 덕동마을 뒷편에 우뚝솟아 있다. 수군통제영이 있을 때 봉수대와 왜군의 상황을 전망했던 곳이다.망덕산 오르는 중에 묘당도가 잡힌다. 이곳엔 정유재란때 명나라 구원군 진린장군의 부대 2,500명이 주둔했다.명나라 구원군은 5천명의 규모로 덕동마을에 당도하여 묘당도와 척찬리에 각각 2천5백명이 주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우리 수군은 덕동본진에 주둔했다. 묘당도는 일제.. 2010.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