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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기 조선혁명선언문을 읽지 않은자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퍼온 글)

by ☆ Libra 2010. 10. 5.

현시기 조선혁명선언문을 읽지 않은자 정치를 하지 말아야한다!

(서프라이즈 / 대단군 (jongwon555) / 2010-10-5 02:31)

 

 

단재신채호를 모르는 자, 이 민족을 이끌 수 없다!!

조.선.혁.명.선.언.문 자신의 진정한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를 말 할 수 없다

1.조선혁명선언(朝鮮革命宣言)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 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 생존의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소득세―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대로 다 빨아가고, 어지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요,

대다수 민중 곧 일반 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내 소득으로 일신(一身)과 처자의 호구 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다 바치어 그 살을 찌워주는 영원한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끝내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은 비율로 증가하여 딸각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배고픈 귀신이 아니면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발자국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일체의 자유가 없어 고통의 울분과 원한이 있어도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 - 학교로 보내고, 조선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소전오존(素전鳴尊)의 형제" 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 한 일본놈들 적은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半日本化)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 채우기, 단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 매는, 콧구멍에는 물 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사전에도 없는 가진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옥문에서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가 될 뿐이다.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경우(境遇)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채찍질·구박·압제를 받아 환해 삼천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로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草芥)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의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3·1운동 이후 수원·선천 등의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서간도·노령·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거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욕보인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일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송장>을 만들려 하는 도다.

이상의 사실에 의거하여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살벌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가 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존>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 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재산·자유 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 등을 거듭 밝힌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민원식 등 한 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따위 광론을 외침이니,

이에 부하뇌동하는 자가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사한 무리가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히 이러한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일반의 배고픈 귀신이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 개 노예 대의사(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아사의 화를 면하겠는가?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어떤 종류의 자치임을 묻지 않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지배하에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헛된 이름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는가 ? 설혹 강도 일본이 불보살(佛菩薩)이 되어 하루 아침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하며,

내정 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헛된 이름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봉대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가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종의 보존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쇄망한 인도족·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금전의 힘으로 그 조상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하나는 그 토지의 넓음 과 인구의 많음으로 상고(上古)에 자유롭게 발달한 문명의 남은 혜택을 지킴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 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사람의 피를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지켰던 전례가 있더냐? 검열·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스스로 떠들어 대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 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 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의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일본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음과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제1은 외교론이니, 이조 5백년 문약정치(文弱政治)가 외교로써 호국의 좋은 계책으로 삼아 더욱 그 말세에 대단히 심하여 갑신(甲申)이래 유신당(維新黨)·수구당(守舊黨)의 성쇠가 거의 외원의 도움의 유무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을 끌어당겨 을국을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믿고 의지하는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갑신 양 전역에 일본이 수십만 명의 생명과 수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노 양국을 물리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일검일탄으로 어리석고 용렬하며 탐욕스런 관리나 국적에게 던지지 목하고, 탄원서나 열국공관(列國公館)에 던지며, 청원서 나 일본정부에 보내어 국세(國勢)의 외롭고 약함을 애소(哀訴)하여 국가 존망·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 - 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년만에 처음 당하던 치욕에 대한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 십년 역사야말로 용기 있는 자로 보면 침을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어진 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러고도 국망 이후 해외로 나가는 모모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일미전쟁(日美戰爭)·일로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운동의 일반 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중의 용기있게 힘써 앞으로 나아가는 의기를 없애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2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의 당시에 열국공관에 빗발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메,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이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생각지 않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총든 무리를 몰아가지고 조일전쟁(朝日戰爭)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 쪽이나 본 이들 -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 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 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 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십여 년 내외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이 없는 단체뿐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의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경제 양 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입고 먹을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전투력의 백분의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쫓아 내어야 할 것이며, 강도 일본을 쫓아 내려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쫓아낼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는가?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위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 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세력 곧 신·구 양 상전의 누가 더 어질며, 누가 더 포악하며, 누가 더 선하며, 누가 더 악한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요,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목을 베어 백성을 위로한다"가 혁명의 유일한 취지가 되고 "한 도시락의 밥과 한 종지의 장으로써 임금의 군대를 맞아 들인다"가 혁명사의 유일미담이 되었거니와,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 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팽창의 열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해진 판단에서 이탈하여 돈 없고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들도 쫓아내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는가?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한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 각오의 첫째 길이다. 일반 민중이 배고픔, 추위, 피곤, 고통, 처의 울부짖음, 어린애의 울음, 납세의 독촉, 사채의 재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되는 강도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때려 누이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四海)에 전하여 뭇 민중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그 <아사(餓死)>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기 있는 자는 그 의분에 못 이기어, 약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포한 강도 일본이 필경 쫓겨 나가는 날이리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 10만이 폭탄을 한번 던진 것만 못하며 억천장 신문 잡지가 일회 폭동만 못할 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궐 안 한 때의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의 대의로 분격하여 일어난 독서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언뜻 보였지만 또한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폭력> 양자의 그 하나만 빠지면 비록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를 내며 장열한 거동이라도 또한 번개같이 수그러지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였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일본을 쫓아내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 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처절하고 씩씩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어두운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기이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처절하고 씩씩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 파괴 ·폭동--의 목적물을 열거하건대,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탐꾼·매국적

4. 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지연시키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 할 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 로 쫓아낼지니라.

5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 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 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제1은, 이족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민족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통치를 파괴함이니라. 제2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적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제3은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함이니라. 제4는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한 자 위에 귀한 자가 있어 모든 불평등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탈, 서로 질투·원수시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공(空)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 제5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전통적 문화사상의 종교·윤리·문학·미술·풍속·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이바지하던 도구가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게 했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 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 사상이 박약하며 자유 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다. 그러므로 민중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新朝鮮)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 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 - 암살· 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수탈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1923년 1월 단재 신채호

 

 

2. 2009년 말에 다시쓰는 조선혁명선언문-
강도 기득권이 우리의 자존을 없이하며, 우리의 주권을 빼앗으며.....
박정원칼럼리스트
* 筆者注 : 지금으로부터 86년전,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피로 쓰신 '朝鮮革命宣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단재 선생의 글을 지금 이 시대의 상황에 맞도록 목적어 정도만을 수정했는데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오는군요. 이래도 되는 것인지.. 86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1.
강도 기득권이 우리의 자존(自尊)를 없이하며, 우리의 주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川澤), 철도, 광산, 어장 … 내지 소(小)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절의 생산기능을 날 것으로 빼앗고 도끼로 끊고, 간판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百一)세, 지방세, 주초(酒草)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을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웬만한 자영업자들은 기득권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 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 곧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종년(終年) 소득으로 일신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 먹으려는 기득권 강도에게 진공하여 그 살을 찌워주는 영세의 우마(牛馬)가 될 뿐이오, 내종(乃終)에는 그 우마의 생활도 못하게 기득권과 자본의 수입(輸入)이 연년(年年) 고도의 속율(速率)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동해바다로로 서해바다로 남해바다의 무인도로 몰리어 가 아귀(餓鬼)부터 류귀(流鬼)가 될 뿐이며,
 
강도 기득권이 찌라시정치, 떡찰정치를 여행(勵行)하여, 우리 민족이 촌보(寸步)의 행동도 임의로 못하고, 언론, 출판, 결사(結社),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회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뜬 소경이 되고, 자녀를 나면 '영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 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무(誣)하여 소잔오존(素盞嗚尊)의 형제'라 하며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 영지'라고 일본놈들이 적은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强盜)정치를 찬미하는 반(半)기득권적인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염세 절망의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사회불안 조성'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유(拘留)되어 주리, 칼 씌우기 차꼬 채우기, 단금질, 채찍질, 전기(電氣)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수족을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刑律)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서 옥문을 나온대야 종신 불구의 폐질자(廢疾者)가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斷絶)하며, 진취활발의 기상은 경우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 편태(鞭笞), 구박, 압제를 받아 환해(環海) 삼천리가 일개 대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작은 인류위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 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기득권이 우리의 생명을 초개로 보아 해방 이후에도 팔도의 의병나던 각 지방에서 기득권이 행한 악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5.2 촛불 집회 이후 서울, 경기 … 등의 국내 각지부터 동해, 서해, 남해, 북한의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屠戮)한다, 촌락을 소화(燒火)한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오욕(汚辱)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인신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악형한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을 '산 송장'으로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거하여 우리는 기득권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에 붙어먹는 통치가 우리 조선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기득권을 살벌(殺伐)함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아침이슬이니 반성이니 주권재민를 입에 올린 자가 누구이냐?
 
너희들이 '심사숙고', '국민 생각 우선' 등을 담보한 맹약이 묵도 마르지 아니하여 미국산 소고기를 집어먹였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 재산 자유 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칠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보느냐? 촛불집회 이후에 강도 기득권이 또 우리의 민주주의 운동을 완화시키려고 방OO, 이OO 등 매국노 한둘을 시키어 이따위 말장난과 돈지랄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하는 자는 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적(奸賊)이 아니냐.
 
설혹 강도 기득권이 과연 막대한 도량이 있어 개연(慨然)히 조금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주권을 찾고 각종 이권을 되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일반의 아귀(餓鬼)가 될 뿐이 아니냐.
 
선거권은 있다고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들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 정치인(政治人)의 선출로 어찌 아사의 화를 구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가종의 자치임을 물문(勿問)하고 기득권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재벌'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그 부속하에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허명(虛名)으로써 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기득권이 돌연히 불보살이 되어 일조(一朝)에 청와대를 돌려주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환부(還付)하며, 내정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기득권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환(撤還)하며, 2MB 정권에 빌붙은 이를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허명의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전멸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딴나라당과 조중동을 주인으로 봉대(奉戴)한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기득권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는 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능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 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일(一)은 금전의 힘으로 그 선조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일(一)은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상고(上古)의 자유발달한 그 여택(餘澤)을 지키고 보존함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인혈을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기득권의 입에 물린 조선같은데서 문화를 발전 혹 보존한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인터넷 언론을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자오(自嗚)하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거하여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기득권과 타협하려는자(법치 확립, 경제 회생, 북한 미사일 운운)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기득권의 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아래와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제일은 현실론이다.
 
이조 오백년 문약(文弱)정치가 '외교'로써 호국의 장책(長策)을 삼아 더욱 그 말기에 더욱 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원(外援)의 유무에서 판결되었다.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갑국(甲國)을 끌어들여 을국(乙國)을 제함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 의존의 습성이 일반 정치 사회에 전염되었다.
 
즉 4.19, 5.18, 6.10 항쟁에 기득권이 누십만의 생명과 누억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이, 전, 노 3인을 물렸음에도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일검(一劍) 일탄(一彈)을 우매하고 탐욕스러우며 난폭한 한 관리나 국적(國賊)에게 던지지 못하고 블로그나 카페에 써갈기며 장문(長文)이나 기득권과 권력에 보여 국세의 고약(孤弱)을 애소하여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우리끼리, 심지어 기득권이 처분·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4.19' '5.18' '6.10' 곧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생긴 뒤 60년동안 매일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청계광장의 촛불, 용산 참화, 21세기에 보도 블럭 깨는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이래가지고는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자(勇者)로 보면 침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인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대선 이후 방콕하는 모모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선거'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민주화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자본 전쟁, 기술 전쟁 등 기회(機會)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었고, 최근 5·2운동에 '평화집회, 국제인권'에 대한 과신(過信)의 선전이 도리어 칠천만 민중의 분용(奮勇)전진의 의기를 타소(打消)하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제 2는 준비론이니, 대선 당시에 BBK가 빗발쳤음에도 종이쪽으로는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다음해의 총선에서도 개헌정족수 확보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준비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돈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불계(不計)하고 의병을 모집하여, 아관대의(峨冠大衣)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산양포수의 화승대(火繩隊)를 몰아가지고 기득권과의 전선에 나섰지만 신문쪽이나 본 이들은 - 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리할 용기가 아니난다.
 
이에 금일 금시로 곧 기득권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사졸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기득권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선거 혁명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감각(感覺)되어, 그 준비론의 범위가 선거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었다.
 
12.19 국치 이후 각 지사들이 혹 봉하의 논을 더듬으며, 혹 청계광장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전남북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중국으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몰하여 2년여 내외각지에서 목이 터질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모임과 실력없는 단체뿐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력(誠力)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기득권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의식(衣食)의 방책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주머니를 채우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활동가를 양성하며, 양성한들 기득권 전투력의 백분지 일의 비교라도 되게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현실',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 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기득권을 구축(驅逐)할지며, 강도 기득권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기득권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 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위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 세력, 곧 신구 양 상전 중 누가 어질고 누가 난폭한지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오, 직접의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주기군이조기민(誅其君而弔其民)'이 혁명의 유일종지(宗旨)가 되고, '단식대장이영왕사(簞食壺漿以迎王師)'가 혁명사의 유일미담이 되었었다.
 
그러나, 금일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 팽창의 열기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定軌)에 벗어나 무전무병(無錢無兵)한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外寇)도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제일보는 민중각오(覺悟)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 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규(熱叫)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연,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 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선각한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先驅)가 됨이 민중각오의 제1로(路)니라.
 
일반 민중이 기(飢), 한(寒), 곤(困), 고(苦), 처호(妻呼) 아제(兒啼), 세납(稅納)의 독봉(督棒)에, 사채(私債)의 독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하여도 죽을바를 모르는 판이다.
 
이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主因)되는 강도정치의 실시자인 강도들을 격폐(擊斃)하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모든이가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그 '아사(餓死)'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란 일로(一路)가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자는 그 의분에 못이기어, 약자는 그 고통에 못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널리 전파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활잔폭(奸猾殘暴)한 강도 기득권이 필경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불러 일깨워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신생명을 개척하자면 시민단체 십만이 일척(一擲)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 페이지 글 쪼가리가 일회 폭행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끝이려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벼랑끝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아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이전 경과로 말하면 5.16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 일시의 활극이 될 뿐이며, 유신 이후의 투쟁들은 충민애국(忠民愛國)의 대의로 격기(激起)한 지식인 계급의 사상이며, 전태일, 김상진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熱烈)하였지만 그 후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6·29 선언을 맞아 만세소리로 민중적 도취가 잠시 드러났지만 결국 폭력, 집단 패싸움인 선거에서는 졌도다. '민중, 폭력' 양자 중 하나만 빠지면 비록 굉열장쾌(轟列壯快)한 거동이라도 또한 천둥같이 끝나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기득권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리라', '매국노와 기득권을 구축(驅逐)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간활(奸猾)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참절장절(慘絶壯絶)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후면에는 흑암(黑暗)한 함정이오, 나아가면 그 전면에는 광명한 활로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참절장절한 기록을 그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 - 암살, 파괴, 폭동 - 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매국 기득권 및 그 쫄다구
2.매국 정권에 붙어먹는 각 관 관리
3.정탐노(偵探奴), 매국적(賣國賊)
4.적의 일체 도구들
이외에 각 지방의 개독 교회나 지역주의 토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적 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中傷)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서 갚을지니라. 자본주의를 들먹여 야비하게 갈취하는 자들은 기득권 강도 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상에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기득권 폭력을 파괴하려는 것은
 
제1은 매국 기득권 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자본, 지식인'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기득권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기득권 전제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한 조선을 발현하기 위하여 매국 기득권 통치를 파괴함이니라.
 
제2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조중동문S’ 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눈가림과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로운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로운 조선민중을 발견 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제3은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신이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오,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이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약탈제도를 파괴함이니라.
 
제4는 사회적 불균형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위에 강자가 있고 천자(賤者)위에 귀자(貴子)가 있어 모든 불균형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삭(剝削), 서로 질투 구시(仇視)하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잔해(殘害)하다가 말경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잔해하여 민중 전체의 행복이 필경 숫자상의 영이 되고 말뿐이니, 민중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균을 파괴함이니라.
 
제5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유래하던 문화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들이 아니더냐. 일반 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 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에 반항치 못함은 전적으로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다.
 
그러므로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鐵鎖)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 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주주의 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매국 기득권 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균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파타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기(旗)'가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치상(癡想)만 있다하면 오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오 둘이 아닌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기득권 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편이 되고 기득권 강도가 한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아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칠천만 민중은 일치로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휴수(携手)하여 불절(不絶)하는 폭력 - 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기득권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剝削)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2009년 5월,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지금 계신다면...
 
이글은 2009년 5월3일 서프라이즈에 게제되어 수 많은 사람이 보았고, 이 당시 뉴라이트의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 여자깡패등으로 비하하고 고 노무현대통령을 언론을 통하여 죽이기가 최고조를 이룰 때 였습니다.
 
 이후 20일만에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지고, 100여년전에 고종황제의 독살로 이어져 3.1 운동, 6.10만세운동으로 이어지는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역사의 준엄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3.단재신채호 조선혁명선언을 가슴에 품어야 일본을 극복한다!

단돈1000원을 준 일본 법원, 아직도 임나본부설을 주장하는 일본을 징치하는길은?
편집부

김원웅 사단법인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은 정의감이 둔감해지고 사리사욕에 어두워 정론의 필봉 무디어지고, 우리사회 일각에서는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 등 일제침략 만행을 정당화하는 해괴한 궤변과 민족혼을 멸시하고 외세의존을 부추기는 한심한 작태들이 공공연히 횡행하며, 국혼을 잊어 자기 정체성을 망각하는 무리들이 잊는 한 일제의 망령은 계속 대한민국을 농단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고 독도교과서문제, 배상금이 아닌 임금 1000원 문제 등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했다.
▲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김원웅은 대전을 세계적인 역사.문화.환경도시를 만들어 세종시와 연계하겠다 © 편집부

  이어진 최홍규(경기사학회장 경기대교수)는 신채호의 <조선혁명> 내용 분석에서 1910년 국치이후 신채호는 중원을 통하여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위한 항일민족해방운동전선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36년 일제의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청도, 노령블라디스크, 밀산, 수분하, 이루쿠츠크, 톰스크, 서간도, 상해, 북경, 천진, 대만 등지를 유랑하면서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 민족독립운동가로서 시도해야 할 가능한 온갖 방법과 이론을 추구하는데 헌신하였다.

  신채호가 의열단 선언문으로 기초한 <조선혁명선언문>은 민족주의 사상과 민족해방운동의 전술론을 집약해서 표현한 것으로 ‘조선민중의 생존을 위해서는 강도적 야수 일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혁명의 당위성을 전제하고, ’민중 각오‘와 민중적 역량에 기초하여 민중이 행동주체가 된 ’민중 직접혁명‘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신채호가 1920년대 민족해방운동을 반제, 반식민, 반봉건이 전제된 민족해방을 위한 혁명의 단계로 이해하고,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민중”을, 그 방법에 있어서 폭력행사를 수단으로 한 “민중직접혁명론”을 천명한 것은 신채호선생의 민족주의 이론 및 민족해방운동의 전술론에 있어서 큰 변모이자 그의 진보적이고 무력급진주의 경향을 집약해서 표현했다는 점에서 크게 주목 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저항적 민족주의와 “민중직접혁명론에서 신채호는 1912년 블라디보스크에서 광복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무장해방투쟁노선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선생은 애국계몽을 전개하던 국내에서도 외세와 투쟁에서 승리한 을지문덕, 최영, 이순신등 애국적인 무장들의 대외투쟁과 역사적 위업을 높이 찬양한 바 있고, 국력배양을 위한 문무겸전의 국민의식을 주장하였다. 신채호선생은 역대 조선왕조가 숭문모화적(崇文慕華的) 유교문화에 심취하여 반식민지적인 한말과 같은 위미한 상태를 초래했다고 보고 문화와 무력의 동시적인 중요성을 인식하고 역사서 저술과 무장독립투쟁 노선을 주장 하였다.고 말했다.
 
  신채호는 1920년대 항일민족해방운동이 당면한 과제를 상해임정 지도부의 독립노선인 ‘외교론’과 ‘준비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일제의 이족통치(異族統治)를 구축하여 민족해방을 달성하고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의 전민중적 역량에 기초한 무장투쟁으로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민족해방운동을 혁명의 단계로 파악하며, 그것도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 직접혁명”이라 칭할 수 있다“고 했고,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궤(定軌)에 일출(逸出)하여 무전무병(無錢無兵)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구도 구축하나니”라고 민중의 각오야말로 민족해방을 위한 혁명제일보임을 천명하였다.고 말했다.
▲안중근의사.이회영선생.신채호선생등을 모신 국제항일열사를 기리고중국 여순감옥에서 안중근의사 의거100년을 맞아 여순감옥을 순례한 항일독립운동가단체협의회 공동대표단 .윤원일.김원웅.함세웅.김삼웅선생과 관계자   © 편집부
  최교수는 특히 이러한 비타협적 무력급진론의 대두는 비폭력.평화주의를 내세웠던 3.1운동의 실패, 베르사이유(1919)와 파리강화회담(1919~1920), 워싱턴회담(1921~1922)때 독립청원운동의 실패에서 온 좌절감이 크게 작용한데다가, 신채호가 비판한 것처럼 상해임정의 민족해방운동 지도노선에 대한반작용이 크게 표면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제는 무저항적, 비혁명적인 최린,이광수,최남선등 국내민족개량주의자들에 대한 포섭공작을 진행하여 국내 민족주의자들의 타협적 경향을 촉진시켰던 만큼, 신채호선생 같은 국외의 무력급진론자들은 더욱 비타협적인 절대독립노선과 전투적인 민족해방운동 노선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최 교수는 “민중직접혁명”의 전술론에서 신채호선생은 이 <선언>속에서 “간할잔폭한 강도일본“의 이족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무장적 폭력수단에 의한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 투쟁을 강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하여 반봉건주의 투쟁을 아울러 수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보다 진보적인 현실인식과 사회관을 짙게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자각된 혁명적 민중이 주체가 되고, 민중적 역량에 기초한 항일 민족해방투쟁론, 곧 ”민중직접혁명론“이야말로 민중적.혁명적.저항적 민족주의가 지닌 전술론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혁명의 주체로서 민중의 발견과 성격에서 신채호는 유.무산 계층의 구별이 당시 좌파운동자들 간에서 일반론으로 대두된 단순한 계급적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을 승인하지 않고, 민족적 이해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계급 문제에 우선되고 그 중요성으로 깊이 인식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깊이 통찰하였다.
 
 즉 제국주의 강국 민중=일본민중, 식민지 민중=조선민중의 개념적 양분화와 그 모순.대립관계를 꿰뚫어보고, 일부사회주의.무정부주의자들간에 일본무산계급과의 상호연대운운이 “일본 무산자를 조선인으로 본다함이 강족에게 납첨(納諂)하는 못난 비열이 아니면, 종로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타하는 인후(仁厚)가 될뿐”이라는 실랄한 비유로 그 일반론의 관념성을 지적하고, 여기서 특권계급은 일제지배층과 매국노, 항일 민족해방운동을 완하. 중상하는 각 지방의 지식인과 지주계층으로 한정하고, 대부분의 피지배적 삶을 영위하는 민족구성원 모두를 ‘조선민중’이라 하고 1920년대 이후 애용한 ‘민중’은 식민지 민중으로서 우리‘민족’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종합토론을하는 김병기박사. 윤병석박사.김삼웅선생 .김관태.최홍규.임형진박사와 김용달박사 ©편집부
   신채호선생은 민중을 자각된 존재로서 자주.자유.평등의 이념으로 민족독립혁명에 참여, 사회개혁을 추진할 주체로서 이상형을 상정하려 했다.고 말한다. 또한 ‘식민지의 민중’, ‘대다수의 민중’, ‘무전.무병한 민중‘ 등으로도 모든 용례들은, 한결같이 일제 이족통치하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신음하는 피지배층인 “조선민중”이며 일제의 이족통치를 타도하고 자주독립과 자유.평등의 이상적인 조국의 미래상을 건설해야 할 ’조선민족‘이다.라고 말했다. 

   이어진 비타협적 자주절대독립 노선에서 강도적 침략주의와 무력행사에서 신채호선생은 무단통치나 문화정치를 막론하고 일제식민지정책의 성격.본질이 모두 인류사의 유례없는 가혹한 폭력정치, “강도적 침략주의”의 표본으로 보고 민중적 역량에 의한 암살.파괴.폭동 등 의열단 폭력투쟁 방법으로 일제에 대한 폭력행사의 대상과 목적물을 “조선혁명선언”에서 구체적으로 예거하여 조국해방투쟁은 무력으로 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실천하고, 국내 타협적 민족개량주의에 대한 적 인식에서 시대적 단계에 따른 참정권과 자치론은 그 주창자가 매판적 친일파의 타협적 개량주의의 차이일 뿐 민족해방운동의 자주성, 절대성의 약화 포기라는 점에서 일제의 회유책으로 조종되는 타협주의의 얼굴임을 비판하고,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는 주의를 가진” 일련의 문화운동자를 민족의 적으로 간주 하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임정의 지도노선 비판에서는 “민족독립”이란 일제에 대한 철저하고도 끊임없는 무력항쟁 속에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며, 국제 열강에 대한 외교적, 의부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주. 독립. 자존의 ‘조선민족의 정신’을 보일 때 가능한 것이라고 보고, 신채호의 외교론과 준비론의 비판은 항일 독립노선의 한계와 그 착오를 지적, 민중직접혁명에 의한 무장적인 폭력투쟁의 정당성과 효과를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이들 노선은 결코 일제에 대한 타협주의 영향이나 민족의 적으로는 규정하지 않고 <조선혁명선언> 발표 이후에는 양병 십만이 일척의 작탄(炸彈)만 못하며 억천장 신문. 잡지가 1회 폭동만 못할지니라“라고 천명하고 일제의 폭력정치, 강도정치로부터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민족해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중직접혁명“에 의한 항일 무장투쟁 방법이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노선이다.라고 규정하였다.

  최 교수는 맺음말에서 첫째 조선혁명선언은 일제를 ‘강도일본’으로 규정하고 강도정치의 표본으로 고발하고, 한민족의 자주독립기풍을 강조하고 민족현실의 참상과 격렬한 투쟁의식을 절실하게 상기시킨다.

  둘째 조선혁명선언은 민족 생존의 적인 일제와 타협하려는 국내의 일부사이비 민족운동자들도 곧 민족의 적임을 단호히 선언하고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는 이데올로그와 문화운동자를 민족의 적으로 규정하였다.

  셋째 조선혁명선언은 당시 임시정부 지도부의 독립노선 중 외교론과 준비론의 비판을 통해 민중직접혁명의 수단에 의한 무력 독립투쟁의 정당성을 규정하였다.

  넷째 조선혁명선언은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제를 타도해야 한다.는 혁명의 당위성을 전제하면서 “민중의 각오와 민중적 역량에 기초하여 민중이 주체가 된 ”민중직접혁명“을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섯째 조선혁명선언은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 반봉건주의 입장에서 파괴,청산 되어야 할 일제 식민지 정책과 봉건적 요소 5가지와 이에 대응된 5가지 건설의 항목을 제시한다.

(1)이족정치의 파괴----고유적 조선의 건설.
(2)특권계급의 파괴----자유적 조선민중의 건설.
(3)경제약탈제도의 파괴-----민중적 경제의 건설.
(4)사회적 불평균의 파괴-----민중적사회의 건설.
(5)노예적 문화사상의 파괴-------민중적 문화의 건설.
▲ (사)동학민족통일회 임형진박사와 단재학회사무총장 성헌식은 자주역사 확립을 위하여  온몸을 던져,일상을 버리고 역사 왜곡과 친일청산을 위한 활동과 한민족 통일에 전력하고 있다 ©자주역사신보 편집부
  이것은 반제 반식민의 이족전제에 대한 전면적 부정일뿐만 아니라 장차 독립될 새나라를 반봉건적인 민중사회, 평등사회로 건설하자는 것으로, 신채호선생의 자유.평등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개혁상을 뚜렷이 나타낸 것으로 오늘 현실에도 준용하면 우리가 21세기에 존재하는지 19세기말에 존재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김용달(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단재의 민족주의와 민족독립운동론의 특질까지 광범위하게 다룬 논고이고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시일야방성대곡>, <3.1 독립선언서>, <대한민국 건국강령>보다 중요 하다.고 말하고, “민중주체”의 “민중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혁명론’이자 ‘독립운동론’이라고 말했다.

    <시일야방성대곡>은 을사5적에 대한 혹독한 비판에 함몰된 나머지 정작 일제 침략세력에 대한 비판에 소홀한 한계를 지니고, ‘3.1 독립선언서는 실생활과 동떨어진 현학적이며 관념적인 한계를 지닌다고 말하고, 조선혁명선언은 올바른 독립운동노선으로 대동단결노선이자 민족통일전선론이라고 말했다.

    무장투쟁론은 한국독립운동의 본질이다. 무장투쟁이 있어야 외교 독립론이나 독립전쟁준비론, 민족문화운동론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2토론자 임형진 교수(경기대)는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위대한 문장으로 평가되는 조선혁명선언문은 민중은 일제 지배자와 매국노, 친일적 무리를 제외한 반일의식을 가진 유산계층, 지식인을 포함한 한국인 동포 모두를 의미한다. 

  민중은 민중직접혁명의 당사자이자 향후 자주.자유.평등의 이념으로 민족독립혁명에 참여, 사회개혁을 추진할 그 주체이다.라고 말하고, 의열단은 조선혁명선언으로 철학과 사상을 가진 독립운동단체로 한차원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 약산김원봉은 일본의 간담을 서늘케하였다. 그가 움직인 자리에는 조선혁명선언문을  남기어 조선민중의 일깨웠다 . 의열단의 강령인 조선혁명선언문이  학교에서 교육된다면 파렴치한 일본정부와 황국신민을 이기는 방법이다.© 편집부
 청도회의에서 무력 급진론과 실력양성론의 대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두 노선은 통합되어 실력양성을 통한 무력노선으로 결정되고, 이것이 일제하 독립운동의 대원칙이 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무력급진론이라는 주장은 편협한 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임형진교수는 아직도 우리사회는 단재신채호선선생의 조선혁명선언의 이상을 현실화 시키지 못하고 식민사학과 일제식민 매국행위자들이 이 사회의 정치, 사회, 경제, 법률, 교육등에서 장악하고 일제식민논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한민족의 통일은 물론 민족공동체의 존망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적극적으로 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입력: 2009/12/25 [17:05]  최종편집: ⓒ hinews.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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