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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최장집과 사해 두루마리 (펌)

by ☆ Libra 2010. 1. 10.
지식인 최장집과 사해두루마리
(서프라이즈 / 초모룽마 / 2010-1-8 23:42)



(서프라이즈 / 초모룽마 / 2010-01-08)


지식인 최장집

지식인들은 대중들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맴도는, 심지어 서로 모순되어 뵈는 진리를 일목요연하고 쉽게 정리하여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이다. 부지런을 떨어, 귀찮아하는 대중들을 깨닫고 행동하게끔 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지식인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 대중이 스스로 유기적 지식인이 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 지식의 보편성(=진리)을 되찾아 인간의 미래를 전망해 보여야 한다.
- 눈앞의 당면 과제를 넘어서, 궁극적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를 보여줘야 한다.
-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참지식인 되기가 쉽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가, 현실에는 진짜들은 간데없고 순 사이비들만 널려 있다. 기어코 가카들마저 등장하여 활개치고 있다. 그것은, 진리가 뭔 개뼈다귀냐며 가카들이 설쳐대도 지식인이라는 자들, 누구 하나 끽소리 못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아니, 오히려 은근히 가카들을 빨아주고 있지 않은가? 가령, 엊그제 경향신문에 난 최장집의 기고를 보라.

“경향신문이 신년호에서 제시한 강제병합 100주년 (...) 하는 식의 논의는 나를 불편하게 한다.”

신문이 의욕적으로 만든 특집에 최장집이 왜 불편할까? “강제병합”이라는 말 때문에? 설마…. 답은, 조금 뒤에 나온다. 최장집은 신문의 특집이 일종의 의식화라고 본다. 뭔 소리인지 직접 들어보자.

“이러한 의식화(儀式化)는 (...) 자기변명이거나, 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다짐함으로써 위안받고자 하는 심리적 효과를 갖는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의식적(儀式的) 이해는 (...)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기보다…”

한마디로, 한일합방 100주년 기획 특집, 새삼스레 그런 거 하지 말란 소리다. 왜 그럴까? 뭐 켕기시는 거 있나??

“거시사회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근대화의 첫 계기가 일제 식민통치에 의해 수행됐다. 이는 주체적, 자립적으로 근대화를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다.”

어라, 일제시대 때 근대화가 이룩됐다고? 설마. 배웠다는 분이 철길 좀 깔렸다고 근대화로 보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여기서는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게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만 알고 패스. 바로 다음에 최장집이 하고 싶었던 진짜 얘기가 나온다.

“한편(A)에서는 주체적, 자립적이지 않은 근대화는 근대화가 아니라고 하고, 또 다른 편(B)에서는 한국의 근대화는 식민지하에서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 이것은 해결되기 어려운 이념적 갈등의 원천이다. (...) 나는 어느 한 관점이 규범적으로 옳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A는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진리, B는 뉴라이트의 요즘 논리다. 하지만, 최장집은 여기서 누가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린 결론 또한 가관이다.

“이 문제는 오늘의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경쟁하는 이념과 관점의 갈등을 제도화하고 조직한 민주정치와 정당들 간의 경쟁을 통해 응답할 수밖에 없다.”

간단히 풀이해보면, 가카들이 ‘집권’했으니 뉴라이트의 B형 논리가 맞다는 거다. 역사고 지랄이고 뭐고 잔말 말자는 거다.


가카들 가운데서

자칭 ‘B급 좌파’들을 위시한 지식 엘리트들이 노무현 시절, 떼 행패를 부린 것은 유명한 얘기다. 요즘엔 저들은 이명박을 욕해댄다. 허나 여기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노무현은 학자적 인물이다. 학자적 군주 정조는 기득권 사대부들의 ‘지식 독점’ - 이것은 조선에서는 권력의 제1 원천이다 - 해체를 위해 능력자들을 파격적으로 등용했다. 기득권을 가진 지식훈구파들에게 정조는 위협적인 인물이다. 정조의 삶이 파란만장할 수밖에 없던 이유다. B급 지식인들에게 노무현도 그런 존재였다. 반면, 그들에게 천박한 가카들의 등장은 역겹기는 하지만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가카들이 삽질할수록 우아한 인텔리겐차의 지적 권위가 빛날 터이니….

노무현은 지식‘대중’들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가카는 지식‘엘리트’들의 작품이다. 노무현은, 역사상 처음으로 지식엘리트들의 지식 독점을 붕괴시키면서 나타난 대중들과 직접 접촉함으로써 등장했다. 지식엘리트들이 당황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겁을 집어먹은 B급들은 노무현의 극렬 안티가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지식대중들을 대변하고 있었다는 오직 그 이유 때문이다. 종교개혁가 루터는 농민들이 교회에 순종하지 않자 그들을 폭도의 무리로 매도했다.

노무현은 이들 지식엘리트들과 토론코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앞에서 말고 뒤에 숨어서만 수군거렸다. 노무현을 피해 다니면서 그 핑계로 만든, ‘국정현안이 산적했는데 하필 지금 시잘데기 없는 토론에 매달리다니’…. 따위의 천박한 논리가 퍼졌다. 이때, (맞다. 토론하지 말고) “갱제나 살리자!”는 구호를 가지고 틈을 비집고 들어온 자들이 있다. 바로 가카들이다. 이명박이 당선된 이유다.

토론을 하자는 노무현의 제안은 여전히 옳고, 더구나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리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미 드러나 있는 진리마저 왜곡되고 잊혀진다. 최장집과 같은 부류가 거짓 진리를 퍼뜨리게 되고 그 결과, 가카들만 줄줄이 등장하게 된다.


사해 두루마리

1947년, 팔레스타인 사해 서쪽 연안 절벽 외진 동굴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 헤매던 어느 목동이 두루마리 모양으로 말린 고대 필사본과 우연히 맞닥뜨린다. 기원후 1세기경 초기 유대공동체에 대한 진실을 밝혀낼 수도 있는, 드라마틱한 발견이다.

예수가 죽은 후, ‘의인’ 또는 ‘예수의 동생’ 야고보를 지도자로 하는 초기 유대공동체는 새로운 종교(기독교)를 만들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대신 그들은, 초기 순수성을 잃고 타락할 대로 타락한 유대 사제계급들과 맞서 싸우면서, 엄격한 금욕적 율법을 지키는 소박한 유대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신약성서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돈놀이하는 환전상들의 좌판을 뒤집어엎은 예수의 일화는 바로 이 운동을 상징한다. 실제로 예수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유대의)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

그 예수가, 자신이 신격화되어 새 종교가 만들어졌으며 그 결과, 인류 역사에 대개 고통만을 안겨줬다는 사실을 알면, 더구나 그가 꿈꾸었던 소박한 공동체와 전혀 반대의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어 마침내 거대한 로마교황청과 기업형 교회들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면, 틀림없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거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런 새 종교를 만들어낸 사람이다. 재밌는 것은, 의인 야고보와는 달리 그는 예수를 직접 보지도, 그의 가르침을 직접 듣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바울은 로마제국의 보호(?) 속에서 거창한 새 종교를 만들어낸 반면, 순수한 공동체 운동을 이끌던 야고보는 사제장들의 돌에 맞아 죽는다. 바울은 능란한 솜씨를 발휘하여 근동의 다양한 신화 속에서 발견되는 위대한 신의 속성들만을 채집, 실존 인물인 예수에 그것들을 덧씌우는 데 성공하게 된다. 처녀잉태, 기적, 부활, 승천….

역사적 인물 예수가 누구인지, 그가 진짜로 무슨 말을 했는지, 그의 삶과 죽음이 예루살렘 근방의 유대공동체에 무엇을 상징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 당시에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객관적으로 기록한 자료가 매우 필요하다. 온갖 과장과 포장에다 가필과 편집이 더해진 바이블은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객관적 기록이 바로 사해 두루마리다.

▲ 두루마리가 발견된 사해해안 절벽 동굴


▲ 사해두루마리의 일부

하지만, 이 귀중한 사료가 발견되자마자 그 소유권과 해석권은 예루살렘이 있는 카톨릭계 프랑스 성서고고학교와 그 학교가 지명한 일부 성직자 겸 학자들, 즉 ‘국제학자단’이 독점해버린다.

이 자들은 뭐가 켕겨서인지 몰라도, 발견 후 무려 40년간 두루마리에 대한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다. 주석을 붙여 곧바로 출판하기로 했었는데도 말이다. 40년 동안 두루마리에 대한 이 독점권은 세습됐다. 여러 사람들이 원본의 공개를 줄기차게 요구했음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자기들만이 신성한 독점권을 가진다는 거다.

이 독점권을 깨뜨린 것은 끈질긴 투쟁의 결과였을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바로 지식의 대중화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사후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각성한 대중들의 요구가 빗발쳤던 것이다. 두루마리 전체는 1991년 공개됐다. 하지만, 주석을 붙인 출판은 또다시 10년 연기됐다.

국제학자단은 마지못해, 신경질적으로, 자료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두루마리가 주석되어 출판됐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게 출판되었더라도 국제학자단의 떼쓰기는 계속될 거라는 점이다. 두루마리 해석의 정통성과 권위는 여전히 자기들만이 가진다는 그런 류의 떼쓰기 말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B급 지식인들의 행패가 그런 종류다.

국제학자단의 떼쓰기는, 두말할 것 없이 그들의 배후에 버티고 있는 로마교황청, 그 공고하기 이를 데 없는 질서와 이익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다. 초기 기독교의 진실, 예수와 야고보가 진짜로 의도했던 바대로 두루마리가 옳게 해석된다면, 그 폭발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읽고 쓰고…

국제학자단들과 마찬가지로 B급 지식인들도 진리를 드러내는 것에 강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미 늦었지만, 지식엘리트란 자들이 지식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공공재산이라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인류의 고통과 재앙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리스·로마의 위대한 진리는 천 년 동안 잊혀졌거나 폄훼됐다가 르네상스에서 재발견됐다. 기원전 450년 그리스의 필로라오스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후, 1510년 코페르니쿠스가 새삼스럽게 이 진리를 꺼내 들기까지는 무려 2천 년이 걸렸다. 그나마 코페르니쿠스는 교회가 무서워, 천체관측을 즐겨했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평범하기까지 했던, 그 진리를 감추려 했다. 바울이 예수 사후의 진리들을 무시하거나 왜곡하지 않았다면, 중세 교회 하의 천 년 고통은 없었을 거다. 국제학자단이 진리를 가지고 장난치지 않았다면 부시가 “하느님의 소명” 핑계 아래 아무 데고 총질해대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지식인들이 있었더라면 일제 식민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설사 일본에 병합됐더라도 친일파들은 광복 후 철저히 응징됐을 거다. 혹여 그때 응징하지 못했더라도 ‘잃어버린 10년' 동안 친일과거사를 깨끗이 청산할 수 있었을 게다. 그것을 못했더라도…. 최소한 가카들의 출현은 막아냈을 건 아닌가.

지식인들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죄다 가짜들뿐이다. 진리를 찾는 데서 우리가 저들에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리는 우리 스스로가 찾아내야 한다. 대중들 스스로가 유기적 지신인이 되어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 그 방법은 부지런히 읽고 쓰고 토론하고 해석하고 비평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가카들은 절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cL) 초모룽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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