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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짜당원 참여후기>참여당의 미래, 아직은 많이 어둡다.(펌)

by ☆ Libra 2009. 12. 16.

<초짜당원 참여후기>참여당의 미래, 아직은 많이 어둡다.
글쓴이 : 옵신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참여당 당원들의 수준이 참여당의 수준이다.
인천 참여당 창당준비식에 참가하고 왔다. 실은 무슨 행사인줄도 잘 모르고 유시민이 온다는 얘기에 갔다가 얼떨결에 당원가입하고 첫글도 남긴다. 뒷풀이 3차때의 장면이다. 연배가 가장 높아보이시는 당원분께서(아마 무슨 직책명도 가지고 계신듯 했다.) 이명박이 싫은 이유를 돌아가면서 한가지씩 얘기할 것을 제안반 강요반하셨다. 참 난감했다. 조금은 강요스런 분위기때문이 아니라 이명박씹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이명박 씹는 사람들을 씹는데 관심이 있는 나의 괴팍함때문이었다.
차례가 쭉 돌아 내 차례가 되었을때 나도 그냥 모나지 않게 다른 분들처럼 이명박 욕하고 한나라당 지지자 욕이나할까 했다. 무지몽매한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한심하게 깔아보며 어떻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낼수 있는 건지 분노하는 것, 얼마나 고귀한 민주시민인가. 허나 싸가지없는 기질때문에 평소 생각데로 얘기해버렷다. 이명박 싫어하는 사람들, 그들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에게 지배를 당해도 싸다고. 한나라당 지지자 욕할만한 자격없다고.
이명박이 정권을 잡으면서 민주주의는 후퇴했다.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같은 기본적 권리들이 독재를 연상케 할정도로 침탈당하고 있다. 이미 위험수위인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고 검찰과 언론은 본격 딸랑이가 되었다. 4대강 환경파괴는 그 휴우증이 작기만을 바래야하는 상황이고 이명박과 한나라당 일족들의 몰상식한 언행들은 쉴새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나라가 개판된 것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아서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민주적 권리들이 억압당할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세상의 이치에 따라 일반시민의 민주적 권리들을 탄압하기에 가장 적합한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았을뿐이다.

촛불집회때 유행한 독일의 시가 하나 있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태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 마르틴 니묄러

유시민은 이 시를 인용하여 공동체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들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를 수배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시민단체 회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모차 엄마를 기소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전교조를 압수수색했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시민들을 불태워 죽였을 때
나는 방관했다.
나는 철거민이 아니었으니까
마침내 그들이 내 아들을 잡으러 왔을 때는
나와 함께 항의해줄
그 누구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니묄러는 사회적 연대실패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통찰했다. 니묄러의 통찰은 따지고 보면 세상의 이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호구란 말이 있다. 완력등에 의해 내 것을 점점 더 많이 빼앗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단호하게 저항하지 못한다면 호구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단도 마찬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전체집단중 일부가 권력등에 의해 권익을 침탈당했을때 나머지 구성원들이 단호히 연대해 저항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더 많은 구성원들이 탄압당하게 된다.
한국의 사회적 약자들은 민주국가의 시민이 아니라 중세시대의 농노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이건 무슨 화형도 아니고 산채로 타죽임을 당한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황당하지도 않다. 철거민들이 화형을 당한건 이명박이 대통령이라서가 아니다. 이명박 훨씬이전부터 산채로 타죽는다해도 어디다 하소연도 못할만큼 민주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채 살아온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터져나온 한국의 본모습일뿐이다. 용산참사는 한국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비현실적으로 실감나게 입증하였다.
88만원세대로 불리우는 비정규직의 이전 명칭은 3D저소득 생산직노동자였다. 3D업종 기피현상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을때 한국이 가야할 길은 3D업종의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소득향상을 도모할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필사적으로 3D업종에 취직하지않으려 자신과 자기 자녀들의 등수올리기에 전력했다. 저소득직종은 비정규직이란 이름으로 바꿔불리우게 되었고 비정규직의 정당한 권익찾기에 연대하지않은 한국의 다른 구성원들은 갈수록 점점 더 많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있다. 이전에는 저소득직종이 아니었던 사무직,교육직등에서도 저소득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의 가장 사회적 약자들이 당하는 권리침탈에 대해 한국인들은 일말의 연대를 보여준 적이 없다. 촛불시민들이 옳거니 하며 을퍼대었던 니묄러의 통찰에 비춰보면 한국의 다른 구성원들이 권리침탈의 피해자가 되는 게 순리다. 정당한 집회와 표현의 권리를 행사했다하여 탄압당하거나 아무리 밤낮으로 스팩을 쌓아봐야 88비정규직의 삶을 살아야 하는게 온당하다.
한국은 가장 사회적 약자들의 민주적 권리들이 억압당한데이어 그 다음 구성원들의 민주적 권리들이 억압받을만한 필연적인 상황에 있었고 광범위한 규모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기에 적당한 인물과 정당에게 권력이 주어졌다.
대게 반한나라성향을 가진 한국의 대중들은 없는 이들, 철거민들, 비정규직 같은 이들의 권익이 향상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복지가 늘어나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이 실질적인 연대를 도모한 적은 없다. 상대적 약자와 강자의 연대는 상대적 강자의 자기몫 양보가 전제된다.
한국의 경제적 양극화는 두가지 차원의 양극화가 있다. 하나는 상위와 하위의 양극화이고 하나는 중간과 하위의 양극화이다. 한국은 상위 소수에게 몰린 부의 비중이 여타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고 공적부조(조세분배)에 의한 소득뷸균형 해소율은 OECD 압도적 꼴찌다. 상위-하위의 격차해소를 위해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부유세를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허나 그전에 선결문제가 있다. 중간과 하위의 격차마저 현저하고 양 계층간의 이동이 어려운 양극화가 실은 더욱 큰 문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두배에 달하고 일단 한번 비정규직이 되면 다시 정규직이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부모가 가난하다면 교육의 기회를 남들만큼 갖질못한 그 자녀들까지 가난하다. 중간소득층과 저소득층은 철저히 유리된채 상호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속에 살아간다.
상위-하위의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한 나라들은 무작정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때려 저소득층에게 나눠준 것이 아니다. 중간소득층이 감당하는 조세부담이 한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복지란 것은 반드시 많은 세금이 전제가 된다. 고세금과 고복지는 하나의 팩키지이며 고세금이 없다면 고복지도 없다. 고복지의 대표국가들이 모여있는 북유럽에서 중간소득층은 자신들의 생활수준이 한단계 떨어지는 정도까지 세금을 낸다.
예를들어 한국의 연소득3000정도의 중간소득층은 세후소득이 2500가량된다. 납세했다하여 생활수준이 중간에서 저층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허나 고복지국가들의 중간소득층은 1500이상까지도 세금을 낸다. 세금을 내고나면 소득수준이 한단계 떨어진다. 그 세금이 복지로 되돌아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들의 자기몫양보는 상대적 약자인 저소득층과의 연대를 가능케 한다. 이 연대가 확보한 수적우위는 고세금-고복지를 정체성으로 하는 정당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이 정당은 상위층에 대한 강도높은 누진세를 제도화한다.
한국의 좌파를 자처하는 진보정당은 고복지나 부유세는 내세우지만 그에 필수전제로 중간소득층이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내야한단 주장은 삼가한다.한국의 진보정당은 정확히 말해 좌파와는 거리가 먼 눈가가리 아웅 복지정책을 내걸고 있다. 중간소득층의 대폭적 증세없이는 재원부족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지금까지 해온 선별적 복지정책을 시행할수 밖에 없다. 선별적 복지정책으로는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고복지(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하다. 서구의 사민주의정당들은 선별적 복지정책은 절대 피해야할 복지정책임을 강조한다. 복지가 한국처럼 망가지기때문이다
나는 노무현대통령 정부에서마저 한국의 양극화가 개선되지 못함에 많은 좌절을 느꼇고 이를 비판하는 진보진영에 상당부분 동의를 했다. 허나 진보정당이 양극화를 해소할 좌파임을 자처하며 노무현대통령을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신자유주의의 역적으로 몰아세움에는 어이없음을 느꼇다. 진보진영이 내세우는 고복지를 성공시킨 서구의 좌파들이 한국의 양극화실태와 진보진영의 조세정책을 본다면 당신들이 좌파냐고 반문할 것이다.(물론 다른 정당들에 비하면 진보정당이 상대적으로 가장 왼쪽에 위치하는 건 사실이다. 또한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가장 사회의 밑바닥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부분들도 많다.)

이것은 진보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고복지를 원하는 중간소득층은 있지만 고세금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유시민은 고세금과 고복지는 떨어질수 없는 실과 바늘인데 한국인들은 고세금없이 고복지를 요구한다고 비판한다. 북유럽같은 복지하려면 지금 세금내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이다. 유시민이 서구의 사민주의자들처럼 고세금-고복지를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정치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문제인식은 그 누구보다도 적확하다.
과거 스웨덴의 우파야당은 중간소득이하 계층에게 혁명적인 감세정책을 대표공약으로 내세운적이 있다. 집권사민당은 그러면 복지가 축소되므로 세금을 지금처럼 많이 내야한다고 반박했다. 선거결과 스웨덴국민들은 세금을 많이 내라고 주장하는 정당에게 정권을 주었다.
소득이 되는 데로 많은 세금을 내서 저소득층을 포함한 모두가 많은 복지를 누리자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유럽엔 존재하지만 한국엔 그런 이들이 없다. 절대 자기몫을 양보하지 않고 연대를 등한시한 한국의 중간소득층은 연대실패의 결과로 말미암아 저소득층에 이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인간답게 살기위한 민주적 권리들를 침탈당할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세계 탑레벨의 초악질이라서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길이다.
또 한가지 짚어볼 것으로 한국에서 고세금이 어려운 것은 형평과세와 조세사용처의 투명성에 대해 국민이 회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금부과의 기준이 공정치도 않고 내가 낸 세금이 올바르게 쓰여지지도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허나 이것은 고세금을 주장하는 정당과 시민들이 생겨나야 하는 이유이지 고세금 주장을 회피해야할 이유가 아니다.
선순환으로 갈 것이냐 악순환으로 갈 것이냐의 문제다. 고세금-고복지는 떨어질수 없는 하나의 팩키지다. 그런데 또 한가지 가장 중요한 팩키지가 중간에 하나 더 있다. 고관심이란 녀석이다. 통상적으로 고세금-고복지가 구현된 나라들은 정치적 관심이 높다. 70%아래로는 투표율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생활정치가 정착해있다. 여가시간에 정당활동을 하면서 보내는 생활정치인들이 널려있다.
이 고관심은 민주주의의 역사가 오래되서 이기도하지만 보다 세속적인 이유가 바탕에 깔려있다. 많은 세금, 세금이 복지로 돌아오지 않으면 생활수준이 떨어질 정도의 많은 세금을 내고있다보니 세금을 다루는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은 저세금-저관심-저복지 유형의 국가다. 허나 복지선진국들은 고세금-고관심-고복지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고세금이 저절로 고복지가 되지는 않는다. 시민들의 철저한 관심과 감시가 고복지를 도출시킨다.
고복지를 산출하는 고관심은 정치발전, 사회발전을 위한 필수전제다. 겨우 연소득3000되는 평범한 소시민이 1500씩 세금을 내는 나라에서는 대운하니 4대강이니 하는 희대의 개삽질이 불가능하다. 내가 낸 세금은 교육복지, 주거복지, 의료복지, 육아복지, 실업복지등으로 반드시 되돌아와야만 한다. 난 그만큼의 복지를 받아야만하는 비용을 지불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복지로 돌아오지 않고 환경파괴에 퍼부어진다? 거대한 규모의 피플파워로 말미암아 당장에 정권퇴진당한다. (고복지 국가들은 통상 비례제를 선거제도로 취하고 있고 비례제는 대게 내각제와 연동되기에 탄핵없이 국회투표에 의한 자진내각해산이나 여론의 압력에 굴한 반자발적인 내각 총사퇴가 자유롭다.)
실은 정권퇴진이전에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수가 없다. 수백억 자산가가 꼼수를 써 의료보험을 단돈 2만원 내는 짓거리를 해왔다. 각종 비리에 연루되있는 부패와 구태의 집결체가 이명박이다. 수입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내는 소시민들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잇는데 이런 애가 대통령이 된다는 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복지선진국의 수상(한국의 대통령)은 단돈 500만원의 부정에만 살짝 연루되어도 단칼에 퇴진당한다. 고세금에 동반하는 고관심의 위력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에게 밥도 못맥일 만큼 심각한 빈부격차문제가 있음에도 불구 수천억을 들여 호화청사를 지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저세금-저관심 국가가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임상실험중이다.
참여당의 모토는 훌륭하다. 참여가 힘이다. 참여당 당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각 지역에 참여당 사무실을 개설하고 창당대회를 열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참여에 임하는 것 너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들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저세금-저관심국가에서 참여당 당원들이 희망하는 수준의 유의미한 정치참여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선진국의 풀뿌리 정치가 정착한 것은 시민들이 많은 세금을 내고 복지의 볼모가 됨으로서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세금은 적게내고 피말리는 부동산과 사교육 경쟁의 볼모가 되어있다. 참여당 당원들도 후자의 처지이지 전자의 상황이 아니다.
좌파 또는 사민주의가 내놓은 최고의 히트상품은 공동구매다. 한때 한국에서 학부모들의 교복공동구매가 뉴스에 오르내린적이 있다. 대기업 브랜드 교복들이 폭리수준으로 너무 비싸다 보니 중소기업교복을 저렴하게 공동구매하는 생활의 지혜를 낸 것이다.
사민주의는 주택이나 교육등을 국가단위로 공동구매한다. 정부가 공동구매의 중계자 또는 판매자 역할을 담당한다. 세금을 걷어서 국가가 직접 집을 지어 팔거나(공공 공영임대주택) 민간업체가 지어놓은 집들이 저렴하게 구매될 있수록 각종 패널티,어드밴티지 부동산정책,세제정책을 건설업체들에 조치한다(민간 공영임대주택). 이렇게 세금을 통해 공구된 주택은 양질이면서도 저렴하다. 이것을 흔히 복지라 부른다.
복지란 이름의 "국가단위 공동구매"는 불필요한 과당경쟁을 방지한다. 각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돈을 모아 집을 살 것이냐, 아니면 정부라는 공구중계자에게 돈(세금)을 내고 집을 살 것이냐는 두가지 소비형태가 있다. 전자의 소비행태로 수십년을 살아온 한국인들의 처지는 처참하다. 30년전에 비해 자가소유주택비율이 30%가까이 감소했고 모두가 내집마련을 위해 아껴사는 것도 모자라 빚까지 내며 이자갚느라 피똥을 싸지만 내집마련은 점점 더 어렵기만 하다.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벼랑끝에 서있다. 내집없는 철거민들은 산채로 불에 타죽기까지 했다...
후자의 소비방식이라고해서 완전무결한 주거복지가 제공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효율이 있다. 최소한 집없다고 화형을 당하진 않는다. 복지선진국들이 제공하는 주거복지를 한국인들도 누리려면 당연히 그에 응당한 비용을 많은 세금으로 지불해야한다. 허나 그 비용은 개별적으로 내집마련을 하는 비용보다 싸다. 공구의 특성상 가격거품이 제거되므로 저소득층에게까지 주거복지가 제공되는 효율이 발생한다.
결정적으로 서구의 사민주의 복지체제가 성공한 것은 고세금-고복지의 공동구매가 개별적인 소비보다 싸게 먹힌다는 이득을 보았기때문이다. 정권이 비좌파정권에 있을지라도 복지시스템의 근간은 흔들리지 않는다. 고세금을 지불하고 복지의 볼모가 된 국민들, 정부가 관할하는 공동구매가 개별소비보다 더 싸다는 맛을 본 국민들이 복지가 흔들리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저소득층에겐 한이 많다.소득이 최하인데서 오는 좌절감, 천시받는 슬픔, 남들과 비교되는 슬픔, 남들처럼 결혼하거나 아이를 낳아 번듯하게 기르지 못하는 슬픔, 아플때 돈이 없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슬픔,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이 없어 부모님의 애잔한 눈을 바라보는 슬픔, 내가 불에 타죽지 않았을뿐 나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미천한 존재임을 마음 한구석에 지각하는 슬픔... 한국 하층민들의 가슴속에 쌓이고 쌓인 슬픔과 위화감들은 공동체 전체로 퍼져나간다.마치 주온의 저주가 내리듯 이들의 한은 다른 공동체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비정규직이 되지 않으려, 화형당하는 철거민이 되지 않으려 한국인들은 살인적인 경쟁속에 살아간다.
연대를 포기하고 각개약진을 택한 한국인들은 점점 더 많은 이들이 하층으로 떨어지게 되어있다. 연대실패의 댓가로 인간답게 살기위한 많은 민주적 권리들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 4대강 사업은 단기간에 상당수의 중간소득층을 붕괴시키기에 적합한 거대한 무효용 재정적자 국책사업이다. 각종 민영화 역시 실현된다면 상당수의 중간소득층을 저층으로 하락시킬 것이다. 세상의 이치란 참 묘하다.
반한나라성향 시민들은 자신들이 찍지도 않은 한나라당에 당하는게 억울하다 말한다. 저소득층이면서 한나라당을 찍거나 정치에 무관심한 이들을 무지하다고 욕한다. 이번에 참여당 창당행사에 가서도 들었던 말들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들 정말 싫다고. 하지만 한국 반한나라시민들의 절대다수는 한나라당에게 지배당하는걸 억울해할정도로 비(非)무지하지도 않고 민주의식이 높지도 않다. 물론 정치무관심자나 한나라당 지지자보다야 상대적으로 낫지만 절대 누굴 욕할 정도는 아니다.
촛불집회를 지나면서,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를 겪으면서, 용산참사를 당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았다. 한국의 시민사회를 담당하고 있는 반한나라 성향의 대중들, 현재 그들의 역량으로는 절대 한나라당을 이기지 못할거라고. 어쩌다 천우신조로 비한나라 정당이 정권을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때보앗듯이 권력을 비한나라당이 잡더라도 국민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지배자는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위시한 카르텔이다.
현재 한국의 반한나라 대중들은 슬램덩크의 강백호같은 모습이다. 단 기본기 훈련을 하지 않는 강백호이다. 엄청난 농구재능과 농구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강백호를 뛰어난 운동선수로 길러내기 위해 강백호를 코치하는 안선생님은 강도높은 기본기 훈련을 강백호에게 주문한다. 어떤 운동천재도 혹독한 기본기 훈련없이 천재선수로 성장하지는 않는다.
기본기 훈련은 지루하고 힘이 든다. 민주주의의 기본기 훈련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는 투표를 통해 운영된다. 투표결과를 결정짓는 선거제도는 민주주의의 기본틀이 된다. 민주적인 선거제도가 무엇인지 학습하고 이를 다른 공동체원들에게 소통하고 알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기 훈련을 하는 격이다.
반한나라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재능이 있다. 그것도 엄청난 재능이 있다.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 그렇게 평화적이고 유쾌한 대규모 촛불집회를 장기간 이어갈수 있다는 것, 어지간한 민주적 재능이 없이는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기본기 훈련은 하지않는다.
반한나라 시민들이 한나라당 찍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한나라당 지지자들이나 욕하고 다닐때에 한나라당은 현행선거제도를 움켜지고 코웃음을 친다. 한나라당에 맞서 선거제를 개혁할 정도의 수준에 반한나라시민들이 다다를때 한나라당을 반영구적으로 제압할 단초가 마련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어떻게 한나라당 박멸의 디딤돌이 되는지 좀 자세히 얘기나누고 싶다. 사실 유시민이 다 했던 말들이다.)
한 나라의 선거제도에는 그 나라 국민들의 철학과 민주의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스웨덴은 중대선거구 비례제를 실시하는 나라다. 그냥 중대선거구가 아니라 중대선거구 비례제다.(정당득표율과 당선의석율이 일치에 가깝게 비례하는 선거제를 비례제라 한다.) 스웨덴의 비례제는 지역구 의석은 한석도 얻지 못했어도 일정득표율을 넘은 정당이면 득표율×1.4를 득표율로 계산하는 어드밴티지를 부여한다. 민주주의란 다수의 의견을 따르되 소수를 존중하고 배려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소수정당에게 득표율만큼의 의석보다도 적은 의석만이 허가된다. 그래놓고는 민주주의를 한덴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위해 한나라당을 선거에서 이겨야 하므로 소수정당에게 가는 표는 득표율대로 의석이 나오질 않아 사표가 되니까 민주당같은 당선가능성이 더 높은 애들에게 몰아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당을 찍는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에게 한나라당에 맞서 선거제를 개혁하도록 요구하지는 못하면서 민주당을 안찍으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분열세력이라고 비난하는 행동은 잘못되었다는 얘기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으면서 무슨 민주주의를 지켜내기위해 반한나라로 대동단결, 차악을 찍어야 된다는 건지 이건 비겁하거나 무지한 행동이다.
민주주의에는 평등선거의 원칙이 보장된다. 평등선거권은 천부인권중 하나이다. 한표한표의 권리가 동등하다는 뜻이다. 한표한표의 권리가 동등하기에 10% 지지를 받으면 10%의석을 가져가는 것이고 30% 지지받으면 30% 의석을 가져간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표의 등가성이다.민주주의 안하겠다는 한나라당이라면 상관없으나 민주주의하겠다는 사람이라면 평등선거가 보장되는 비례제로 선거제를 개혁하기위해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맞다.
그 방법을 모색하기 싫다면 한나라당,민주당같은 거대정당은 득표율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특혜를 누리고 소수정당은 득표율보다도 적은 의석을 가져가는 차별을 당하는게 왜 정당한지를 민주주의에 근거해 설명해보라. 나는 머리가 나빠서 도저히 왜 이런게 정당한지를 이해할수가 없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민주당 투표자의 수준이 민주당의 수준이다. 민주당 투표자들이 선거제 개혁에 미온적인 민주당 기득권자들에게 충분한 압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은 절대 선거제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소수정당을 찍어본 적이 없다. 찍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단 한석이라도 한나라당에게 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무조건 당선가능성에 따라 김대중,노무현,민주당,열우당만을 찍어왔다.
그러나 다가올 선거들에서 민주당을 찍을 일은 없다.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를 얻어도 무방하다." 당선가능성에 의거해 민주당을 찍기위한 필수전제조건은 민주당이 선거제개혁에 100% 착수할 의지가 있다고 판단될때이다. 그 이전까지는 당선가능성에 따라 민주당을 찍을 일은 없다. 선거제를 바꾸지 못할 국민들이라면 한나라당의 지배를 받는다해도 절대 억울해할 일이 아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현재의 반한나라 시민들은 한나라당에게 충분히 당해도 싸다. 정 억울하면 니묄러의 무덤을 파서 침을 뺃는게 낫다. 소수정당의 평등선거권을 보장하기위해 연대하여 싸우는 대신 소수정당의 평등선거권을 박탈하는 선거제에 따라 투표해온 반한나라 시민들, 그들의 민주적 권리들이 한나라당에 의해 박탈당하는게 세상이치다.
이것은 비단 민주당 투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참여당 지지자들도 그들의 민주적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또한 그들보다 더 약자인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선거제 개혁을 위한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옳다. 참여당 당원들 내부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비토의 여론이 생각보다 많다는걸 이번 오프에 참가하고 알게되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주장들에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앙금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평등선거권을 보장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보다 몸집이 작은 참여당 또한 같은 입장아니던가.
고세금-고복지를 정체성으로 삼으며 이에 찬성하는 시민들로 정당이 구성되기 위해서도 선거제 개혁은 필수전제조건이다. 당장에 서구같은 사민주의 정당이 다수정당으로 등장할 수는 없다. 일단 소수정당으로 출발한뒤 비례제를 통해 차츰차츰 수권정당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당연히 비례제없이는 다수정당으로 성장할 수도 없고 정당출현 자체도 불확실하다.
유시민은 독일식 소선거구 비례제를 지지하고 있으며 왜 비례제로 바껴야 하는지 가장 적확한 문제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이다. 진보정당도 똑같이 독일식 비례제를 지지하나 그들의 비례제 지지이유는 한나라당 공포증이 있는, 반한나라 진영중 최대다수의 민주당 투표자들로 하여금 진보정당 니들도 한심한 구석이 많다는 대립을 불러오기 쉽상이다. 유시민은 여러가지 이유들로 민주당에 입당하기를 거부하고 참여당을 선택했다. 민주당이 자신들의 기득권이 천년만년 보장되는 현행선거제를 고수하는 것 또한 그 이유들중 하나이다. 유시민이 진짜 미친 천재라면 그의 구상대로 민주당을 치킨게임의 장으로 불러내고는 앞으로 있을 3번의 선거에서 언제 어떤식으로든 민주당이 비례제로의 선거제 개혁에 울며겨자먹기로 동의하게끔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에 대한 얘기들은 앞으로 좀더 자세히 얘길나누고 싶다.)

참여당이 앞으로 걸어갈 길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제 창당 초기단계이니 당연하다. 하지만 현재 다수정당들보다는 이미 훨씬 나은 정당임을 알고있다. 나의 개인적인 정치적 선택은 치킨게임 상황에 따라 가급적이면 진보신당, 여의치 않으면 참여당이 될 것이다.(이런 문제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최우선적인 희망은 참여당과 진보정당을 통해 선거제를 바꾸는 것이다. 대선 결선제, 총선 비례제, 지방선거 비례제가 개인적인 바램이다. 유시민의 견해를 빌자면 선거제만 바껴도 십년안에 확 달라진 한국이 가능하다고 한다. 솔직히 그건 좀 오바같고 선거제 개혁을 통해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은 분명하다. 선거제가 바뀌지 못하면 유시민의 말처럼 멀고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현행 선거제하에서는 사실상 한국의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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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눈팅에다 초짜당원이 첫글로 참 엄한 얘기들을 했습니다. 제 깜냥이 부족하고 소양이 모자라서 모나지 않게 얘기하는 걸 잘 못합니다. 처음 찾아온 초짜당원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제가 3차뒷풀이까지 함께했는데 나중에 보니 같이 있던 분들이 창당의 주역들이시더군요;;;; 행사장을 못찾아 늦는바람에 첨맘님의 강연을 놓친 것이 많이 아쉽네요. 길을 물어도 아무도 모르는 부평극장ㅡ.ㅜ;;
행사장에 막 도착했더니 첨맘님은 사인회마치고 화장실 가시더군요. 그래서 쫄래쫄래 따라가 옆에서 같이 볼일보면서 다짜고짜 안녕하세요 말걸었습니다. 한손으론 바지춤을 추스리고 한손으로 전화를 하시면서 당황하시더군요;;; 한달전에는 노회찬대표의 옆자리에서 같이 볼일 본 적이 있다는 조크를 해서 2초정도 웃겨드렸습니다. 어쨋든 유시민과의 밀착대화에 성공 -_-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