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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10

정치유배자 유시민의 소박하지만 결연한 귀환 (펌) 정치유배자 유시민의 소박하지만 결연한 귀환 글쓴이 : 재능세공사 출처 : 유시민을 믿고 지지하는 참여시민 네트워크, 시민광장 한국정치의 미래를 향한 유시민의 도전 그가 돌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후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며 자기다운 삶과 공인으로서의 소명사이에서 오랫동안 고민의 나날을 보냈던 유시민 전 장관의 선택은 예상했던대로 후자의 길이다. 이미 노무현 재단과 시민주권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양산 재보궐 선거에서는 현장을 누볐던 그이기에 어느 정도 그의 결심을 유추해 볼 수 있었지만 상징적인 출발선을 어디에 둘 것이고 어떤 모양새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했던 대목이다. 그는 정공법을 선택했고 현실적 대안보다는 미래를 향한 도전을 선언했다. 아직은 견고하지 않은 위상임에도 불구하고 차.. 2009. 11. 14.
출사표 던지기 전의 유시민, 던진 후의 유시민(서프라이즈 펌) 출사표 던지기 전의 유시민, 던진 후의 유시민 (서프라이즈 / 워낭소리 / 2009-11-10 14:38) 출사표 던지기 전의 유시민, 던진 후의 유시민 (서프라이즈 / 워낭소리 / 2009-11-10)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국민참여당에 평당원으로 입당했다. 신분은 평당원이지만, 참여정부의 적자인 그를 평당원으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그의 입당을 출사표로 보아 무방하다. 유 장관 자신도, "아주 먼길을 떠나는 심정이다. 거취 문제도 그런 차원에서 봐달라. 무엇은 한다, 무엇은 절대 안한다고 선을 그어놓으면 나중에 뭘 하기 어렵다." 고 하지 않았나. 10년의 녹녹치 않은 집권 경험이 묻어나온 처신으로, 이전의 유시민에게서 볼 수 없었던 노련함까지 더해진 느낌이다. 늘 그의 권력의지 없음을.. 2009. 11. 14.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다. 2006년 부터 블로그를 이용했다. 다음과 네이버 블로그를 이용했다. 한참 포스팅의 재미에 빠져 있다가, 언제 부턴가 점점 재미를 잃고 바쁜 일상탓이긴 하지만 두 곳 모두 임자없는 블로그가 돼가고 있었다. 나이먹을수록 목적이 있어야 움직이는 것일까, 이젠 까닭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깝다. 주기적인 글쓰기를 하게 됐다. 덩달아 사진 찍을 일도 많이 생기고... 기자로 활동하면서 취재한 것들을 컴퓨터에 놔두는 것보다 관심있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기자로 있는동안 꾸준한 포스팅도 가능하고 블로그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다 티스토리를 만났다. 맘에 들었다. 특색있는 블로거의 능력대로 표현되는 티스토리블로그는 블로거가 상상한 것을 현실로 다가가게 해준다. 내가 살아가는 주변이야기는 나라 전체에서.. 2009. 10. 31.
개혁의 전도사, 유시민의 자유주의 (2003년 5월.우리힘닷컴 기고) 진정한 자유에 대한 자각으로 자유를 왜곡했던 지난 시대의 잔재들을 청산해야 국회의원 유시민의 국민의례관련 발언이 논란이다. “주권자인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 상징물인 국기 앞에서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을 공개적으로 서약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내면적 가치를 국가가 정한 의식을 통해 공공연하게 고백하도록 또는 그 고백을 들을 수밖에 없도록 강제하는 것이므로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틀 속에 강요받는 애국심은 지난 7,80년대에 행해지다 사라진 여러 가지 국민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날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내려야 했으며 그때마다 애국가가 흐르고 가던 길 멈추고 국기를 바라봐야 했다. 국민교육헌장이란걸 외우기도 했다. 영화관에선 .. 2003. 5.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