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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2

고금유림의 요람 6원사를 찾아 - 숭유사 조선은 유학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고 베풀었다. 조선의 정치,사회,문화를 통틀어 유학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이 따라야 할 양식이었다. 각 지방마다 유명한 서원이 있었고, 서당은 보통사람들의 기초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원(院).사(祠) 는 이러한 유교문화가 낳은 것으로 기품있는 스승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의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이었다. 섬이라하여 유학의 가르침이 미치지 않을 것인가? 고금도는 유배지인 까닭에 중앙의 사대부들이 수없이 다녀갔다. 정쟁을 비롯한 여러 이유로 이곳에 온 사대부들은 유배가 풀리기도 하고 아예 이곳에 정착하기도하고, 중앙의 부름을 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생을 마치기도 했다. 고금도사람들은 그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때문에 고금도는 완도의 다른 섬들에 비해 유풍이 강한 .. 2010. 9. 17.
<섬기행>완도군 신지도(薪智島) - 남해안의 대표 휴양지, 명사십리가 있는 곳 유배지의 한이 항일독립운동의 성지로 우뚝 서다. 완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신지도, 북으로 고금도와 조약도(약산면), 생일도와 평일도(금일읍)가 동편에, 남쪽으로 청산도가 자리잡고 있다. 동서로 길다란 모습이다. 서쪽에 상산(324m)이 우뚝 솟아 동쪽으로 향하고, 산줄기는 섬의 가운데 잘룩한 허리의 평지인 대평리를 지나 동쪽으로 노학봉(225m)을 이루다 바다로 들어간다. 지난 2005년, 신지대교의 개통으로 신지도는 인접한 완도읍과 사회, 문화, 경제의 공동체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보배로운 땅이다. 전국으로 알려진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더욱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곳이 되고, 완도의 대표관광지로 관광완도의 메카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해수욕장주변의 드넓은 지역엔 소나무 숲과 명사십리 바다의 아름다.. 2010.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