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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덕산2

돌, 임진왜란때 무기로 사용했다. - 김광열 옹이 들려주는 이야기 1 (고금도사람들) 첫 만남, 김광열 옹(74)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만난 적은 없지만, 마치 백기완 선생과 만나는 그런 것이리라는 착각이 들었다.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라치면 노래가락처럼 점점 흥을 돋구다 "아, 그거 참!" 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김광열 옹의 얘기는 나이 어린 우리 두사람의 마음을 빼앗았다. 말속에 열정이 담겨 있었다. 벗과 나는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밥 때가 훨씬 지나서야 다음에 또 뵙기로 하고 문밖을 나섰다. 바닷가 마을 집집마다 뒤꼍에 울창하게 울타리를 만들고 있는 왕대와 신의대가 눈에 들어 왔다. 저 풍경이 이젠 예사롭지가 않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통제영이었던 고금도, 이곳에서 왜적을 물리치려 했던 고금도사람들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2011. 5. 22.
망덕산(望德山)에 올라 화성마을바닷가에 보이는 풍경이다. 매생이 발이 박혀있는 썰물에 큰개섬이 보인다.1872년에 제작된 지방도 고금도진지도엔 가지도(加枝島)라 명기되어 있다. 참왜도 - 이순신장군의 아들 면을 죽인 왜군을 붙잡아 이곳에서 죽였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화성마을 앞에 있는 큰개섬과 나란히 놓여있다.망덕산에 오른다. 임진왜란때 수군본영이 자리잡은 덕동마을 뒷편에 우뚝솟아 있다. 수군통제영이 있을 때 봉수대와 왜군의 상황을 전망했던 곳이다.망덕산 오르는 중에 묘당도가 잡힌다. 이곳엔 정유재란때 명나라 구원군 진린장군의 부대 2,500명이 주둔했다.명나라 구원군은 5천명의 규모로 덕동마을에 당도하여 묘당도와 척찬리에 각각 2천5백명이 주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우리 수군은 덕동본진에 주둔했다. 묘당도는 일제.. 2010. 1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