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과 근대의 환생, 박정희(서프라이즈 펌)
(서프라이즈 / 국민대 총학생회장 / 2009-11-6 02:24)
친일과 근대의 환생, 박정희
(서프라이즈 / 국민대총학생회장 / 2009-11-06)
민족문제연구소가 지난 5일 ‘박정희, 만주군에 혈서’ 지원을 했던 사실을 구체적인 사료로 공개하며 박지만씨의 항의를 일축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어 ‘새로운 사실’은 되지 못하나 그 구체적 사료를 제시함으로써 충격을 주고 있다.
얼마 전 난데없이 안중근 의사의 의거일과 때를 맞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코미디가 벌어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냈지만, 박정희 시대의 공(功)과 과(過)를 엄격히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논리가 제법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 경제위기 상황이 찾아오면 무덤에서 다시 불러내는 것은 물론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면 언제나 1위를 차지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공이 크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선 안중근 의사의 단지 혈서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는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 것이고, ‘공과’론을 꺼내는 사람의 논리의 근저에서는 심각한 근대화 찬양론이 묻어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박정희 찬양론으로 나타나는 한국 보수주의의 한계이며, 둘째로는 근대화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관련되어 있다.
한국의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 이는 바로 한국의 보수주의가 태생적으로 존경받을 수 없는 유력한 근거를 제공한다. 그것이 바로 5일 민족문제연구소가 공개한 사료로서 드러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반부 일생의 자취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긴 칼이 차고 싶어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는 만주군에 입대한 박정희는 줄곧 일제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어 총부리를 독립운동가들에게 겨누는데, 그 대상은 우로는 김구, 김규식과 같은 애국인사들이요, 좌로는 김원봉, 여운형, 박헌영 같은 인사들이다. 또한, 해방 이후에는 일본육사에서 퇴출당하고 국군에 가담하지만, 숙군작업의 가운데서 동지들의 이름을 팔아 생명을 구하는 한마디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닌 ‘기회주의적’ 행태로 전반부 일생을 보낸 것이다. 이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주단지 모시듯 받드는 것은 현재의 보수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러한 박정희 찬양론이 부각되는 것은 누군가의 ‘의도’가 짙게 깔려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근대화론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다. 그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뛰어난 영웅이 국민의 가난을 이겨냈다는 것은 감동적인 요소로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또한 일정부분 그 성과를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근대화 그 자체를 찬양하며 절대시하는 것에 큰 문제가 있다. 여기에서 누군가의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다, 조갑제,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보수주의 운동 흐름의 기저에는 경제 근대화의 찬양으로 박정희 근대화, 그 이전에는 친일근대화로 이어지는 흐름들을 ‘재평가’의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이다. 근대화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하는 것은 근대화 주체의 정당성이다. 아무나 밥만 먹여주면 충성할 거냐는 질문은 인간의 존엄과 관련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근대화의 맹점은 일제강점기나 박정희 시대나 맹점이 존재한다. 단언컨대 이러한 역사인식으로는 한국을 민주선진화시킬 수도 없고 대학생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1위라는 슬픈 자화상을 극복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왜 자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꾸 무덤에서 나오는 것인가. 박정희 향수에 기댄 현실 정치세력이 자꾸만 한국사회에서 유력자의 위치로 전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놀랍지 않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부각되면 될수록 한국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러한 역사적 퇴행을 극복해야 또한 이러한 현실세력을 극복해야 민주주의와 인권이 성숙되어간다. 대학생 역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박정희를 추억하는 ‘대타협’은 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한다는 인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 유치원생도 외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당시도 헌법상은 민주공화국이었다. 우리는 그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났던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이 비로소 최근에 와서야 무죄로 판결된 사실을 응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보수주의가 재정립되기 위해서는 박정희 찬양론의 한계를 딛고 일어서는 시도를 해야 한다. 쉽게 말해 인정은 하지만 절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근대화의 환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한반도를 포괄하는 열린 민족 담론을 형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냉시해왔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이제는 인정하고 감싸 안아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보수주의적인 분들이 이제 마음속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는가. 진보주의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약한 프레임이라면 보수주의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매우 강한 구속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재정립을 먼저 나서서 할 때에만 비로소 존경받는 보수주의가 생길 것이며, 현실에서의 상생과 타협이 이뤄질 것이다.
민족사학
국민대학교 41대 총학생회장 김동환